30세 최연소 상원의원서 3수 끝에 78세 최고령 대통령으로

바이든은 누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972년 30세의 나이에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인은 1942년 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3수 끝에 77세에 대선에서 승리했고, 내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가질 때면 78세가 된다.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정치 경력은 화려하다. 6년 임기의 미 상원의원을 6선이나 지냈다. 그는 “나보다 오래 상원에서 근무한 의원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8년간 부통령으로 일했다. 1973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44년 동안 워싱턴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던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온건하고 친근한 이미지도 장점이다. 친화력을 바탕으로 노동자, 노동조합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도 정치적 자산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정당을 떠나 많은 정치인과 친분을 쌓았다. 특히 2018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는 깊은 우정을 나눴다. 바이든 후보가 매케인의 지역구로 공화당의 텃밭인 애리조나주에서 이긴 것은 이번 대선의 결정타 역할을 했다. 매케인과의 우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워싱턴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때 묻은 기득권 세력이라는 꼬리표가 대표적이다. “오락가락하고 우유부단하다”는 비판도 있다.

1972년 바이든 상원의원 당선 축하 행사에서 첫 부인 닐리아(가운데)가 소감을 밝히는 모습. AP뉴시스

바이든 당선인은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치러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미국 정계 중심에 들어왔다. 그는 30살에 상원의원이 되면서 미국 역사상 6번째 최연소 상원의원이 됐다.

1972년 상원의원 선거 당시 공화당 현역 상원의원이었던 칼렙 보거스는 델라웨어주에서 하원의원 3선, 주지자 재선, 상원의원 재선을 했던 거물이었다. 20대였던 바이든이 겁 없이 뛰어들어 기적적인 승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바이든은 델라웨어주를 기반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 주로 외교위원회와 법사위원회에서 일했다. 1987년부터 1995년까지 8년 동안 상원 법사위원장을 지냈고, 두 차례에 걸쳐 3년반 동안 외교위원장을 지냈다. 그가 외교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러나 2002년 10월 미군의 이라크 공격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바이든 정치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오바마가 상원의원 시절 외교위원회를 선택했고, 당시 위원장이 바이든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엔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바이든은 급부상하는 오바마를 경계했고, 오바마는 바이든을 노회한 인물로 여겼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부통령 재임 시절인 2017년 1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영예의 시민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는 모습. AP 뉴시스

하지만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거치면서 한 팀이 됐다. 오바마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백인들의 지지를 받는 온건 성향의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택했다. 이들은 백악관을 차지했다.

바이든은 1988년과 2008년, 두 차례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가 중도 사퇴했다. 1988년엔 당시 영국 노동당의 닐 키녹 당수 연설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하차했다. 2008년엔 낮은 지지율이 발목을 잡았다. 경선 개막전이었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0.9%의 지지율을 기록하자 그날 밤 사퇴를 선언했다.

올해 민주당 경선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대세’ 후보 소리를 들었던 바이든은 민주당 경선 1·2차전이었던 아이오와주·뉴햄프셔주에서 각각 4위와 5위로 처지며 몰락 위기에 빠졌다.

다음은 선글라스를 쓴 바이든이 2013년 판문점을 방문해 공동경비구역(JSA)을 둘러보고 있는 장면. AP연합뉴스

그러나 급진 좌파라는 공격을 받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 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민주당 주류가 움직였다.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등 중도 성향 후보들이 줄줄이 경선을 사퇴하고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경선 승리는 바이든의 자력이라기보다는 민주당 주류의 작품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바이든은 전형적인 미국 중간계급 가정에서 자랐다. 부친이 중고차 판매업을 했으며, 바이든은 학창 시절 말을 더듬어 고생을 했다. 시라큐스대 로스쿨을 졸업한 바이든은 변호사가 됐다. 민주당원이었던 그는 28세 때 델라웨어주 뉴캐슬 카운티의 의원 선거에 출마해 승리하면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바이든은 유력 정치인으로 살아왔지만 개인적으로는 삶의 비극을 통과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공감 능력을 지니게 됐다.


바이든은 1972년 첫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뒤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 부인 닐리아가 세 자녀를 데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갔다가 트럭에 받힌 것이다. 닐리아와 1살 난 딸 나오미는 숨졌고, 장남 보와 차남 헌터는 중상을 입었다.

바이든은 두 아들의 치료를 위해 상원의원 포기 의사를 전달했으나 민주당 지도부가 만류했다. 바이든은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 델라웨어에서 워싱턴의 의사당까지 150㎞를 기차로 출퇴근했다. 그는 상원의원 36년 동안 이를 지켰다. 장남 보가 2015년 뇌종양으로 45세에 세상을 뜬 것도 바이든에겐 참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보는 이라크에서 군 복무를 했고, 델라웨어주 국무장관을 지냈다. 모범적인 아들이었으며 정치적 후계자였다.

바이든은 1977년 지금의 부인 질과 재혼했다. 이들은 딸 애슐리를 낳았다. 보와 달리 차남 헌터는 바이든의 아킬레스건이다. 헌터가 우크라이나 가스회사의 이사로 일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바이든의 약점이 됐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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