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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문화스케치] 혼잣말에서 함께 주고받는 말로


얼마 전, 대구에 내려가서 북 토크를 가졌다. 행사를 개최한 곳은 한 유통 사업체가 운영하는 편의점이었다. 온라인으로 하는 행사가 익숙해질 만도 한데, 3대의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일이 적잖이 긴장됐다. 유통 사업체가 운영하는 계정과 두 군데의 출판사 계정을 통해 동시에 생방송으로 송출될 예정이었다. 그저 준비해 왔던 얘기를 제대로 전하자는 마음뿐이었다. 카메라가 일제히 켜지고 나의 시선은 세 곳을 향해 분산되기 시작했다.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진동이 느껴졌다. 나 혼자 떠들고 있다는 공허함에서 오는 떨림이었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될 북 토크를 이런 식으로 이끌어나갈 수는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앞의 모니터를 보니 실시간 댓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보다 관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으로 말을 하는 동시에 눈으로는 화면을 응시했다.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댓글이 올라오는 채널도 세 개 이상이어서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슬쩍 봤다가 카메라를 슬쩍 봤다가 휴대전화 화면을 슬쩍 봤다가 정신없었다. 무수한 ‘슬쩍’들 사이에서 동공이 흔들리는 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많은 이들이 동시에 말하는 방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느낌이 싫지 않았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말을 놓치기 싫었다. 내 안에 있는 줄 미처 몰랐던 집중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사람들의 글을 따라 읽으면서 거기에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을 덧붙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흡사 어떤 흐름에 몸을 실은 느낌이었다. 파도타기를 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파도타기를 할 때 사용되는 타원형의 널빤지가 각각의 모니터 같았다. 딴생각을 하는 시간에도 눈과 입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대일 대화가 주는 ‘깊음’도 매력 있지만 일대다 대화가 주는 ‘다채로움’도 신선했다. 감각이 사방으로 열리고 있었다.

여유가 생기니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깃거리가 떠올랐다. 나는 어느새 책과 관련된 내용뿐 아니라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명색이 편의점에서 하는 행사에서 책 얘기만 하는 것은 재미없지 않은가. 초반에 경직됐던 몸도 어느새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말이 말을 잇는 재미에 그야말로 푹 빠져들었다. 댓글로 공감을 표현해준 랜선 관객들 덕분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글의 토씨를 통해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웃는 얼굴, 끄덕이는 얼굴이 화면 너머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붙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자못 진지한 분위기였는데, 편의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좌중이 금세 떠들썩해졌다. 문득 TPO(time·place·occasion, 시간·장소·상황)란 용어가 떠올랐다. 이는 본디 소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 요인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강연할 때도 TPO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시간과 장소와 경우를 파악하는 일은 강연자로 하여금 현장에 적극적으로 속하게 만들어준다. 현장에 속한 사람은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해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상황을 장악하려는 욕심보다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싣는 유연한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비대면 방식의 행사가 늘어나면서, 동시에 여러 개의 감각을 활용하는 게 중요한 일이 됐다. 모두가 이 흐름에 발맞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만큼 이 시기에 빛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제한된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연결의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몰랐던 어떤 능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시선이 분산되면서 한데 모이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기대하지 못한 모종의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읽으면서 말하는 것이, 마치 들으면서 말하는 대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시간성이 심신에 새겨지는 과정은 각기 ‘다른 공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의 타래가 서서히 풀리는 순간, 그것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게 가닿는다. 동시에 나도 말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혼자 내뱉는 말은 함께 주고받는 말이 된다. 우리는 마침내 연결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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