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 잡아내지 못한… 미세한 감정의 가닥까지 붓질하다

서동욱 개인전 ‘그림의 맛’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싱크대 앞에 서 있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자세, 소녀 시절 버릇처럼 소매 끝을 만지고 있는 손동작에서 모종의 불안감이 느껴진다(사진). 미지의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사진처럼 사실적인 장면, 그러면서 사진이 결코 표현하지 못하는 미세한 감정의 가닥까지 뽑아 올리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붓질의 힘이다.

그렇게 가장 전통적인 장르인 회화 작가로 돌아와 ‘리얼리즘 초상화’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서동욱(46) 작가의 개인전 ‘그림의 맛’이 서울 종로구 북촌로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프랑스로 유학 간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은 영상 작업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유럽에서 주목받던 피터 도이그, 다니엘 리히터 등 회화 작가들에 영향을 받아 회화로 돌아섰다. 헤어진 여자 친구의 초상화를 그린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처음 ‘서 있는 사람들’ 연작에서는 길거리 하위문화를 연상시키는 익명의 청년들을 어떤 배경도 없이 인물 자체만 부각해 그렸다. 2013년부터 발표한 ‘실내의 인물’ 시리즈에선 주변의 지인을 그리는데, 어떤 상황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소품과 배경을 넣음으로써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낸다. 이 연작은 자연광을 활용함으로써 인물의 표정이 훨씬 자연스럽고, 감정 표현도 섬세해 마치 감정이 가장 고양된 어느 한순간을 포착한 듯하다. 작가는 “붓질에는 특별함이 있다.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보고 그리지만, 사진은 잡아내지 못한, 내가 그 인물을 통해 느낀 감정까지 붓질로 덧입힐 수 있다”고 말했다. 붓질이 드러나게 일부러 물감을 얇게 발라 그린다. 12월 6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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