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전개 빠른 숏폼 공연, 웹 드라마와 차별성 보일까

MZ세대가 이끈 숏폼 콘텐츠 공연계가 이어받아 재창조

웹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속 장면(위 사진)과 웹 뮤지컬 ‘킬러파티’ 트레일러 영상. 최근 공연계에서는 무대 공연을 숏폼 콘텐츠로 압축해 10분 내외의 영상으로 제작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지저분한 얼룩이 묻은 벽 앞에 빨간 레오타드(상·하의가 이어진 속옷)를 입은 남고생 준호가 등장한다. 휴대전화를 들고 기괴한 자세를 취하는 준호의 모습에서 화면은 어느새 체육시간으로 바뀐다. ‘왕따’라는 자막과 함께 희주의 모습이 등장했다가, 카메라는 다시 교실에서 수다를 떠는 준호, 희관, 태우의 모습을 잡는다. 새로운 인물이 나올 때마다 화면에는 이름과 직업 등이 표기됐다. 대사도 자막으로 흘러나왔다. 영상은 “여자 레오타드를 입은 남자애 사진이 올라왔다”는 민지의 말에 경악하는 준호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예술의전당 유튜브 ‘싹 온 스크린’에 지난 1일 올라온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1부 영상이다. 2015년 초연한 이 작품은 불공정한 경쟁에도 불평 없이 어른을 따라야 하는 청소년의 현실적 고민을 다뤘는데, 이 영상이 특이한 건 80분짜리 무대 공연이 7분30초 분량으로 업로드돼서다.

이 영상은 예술의전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연 영상에 도전하며 만든 ‘플레이 클립스’ 중 첫 작품이다. 연극을 짧은 비디오 여러 편으로 쪼개 만든 숏폼 콘텐츠로, 5부작으로 연재된다. 현재까지 숏폼 공연 콘텐츠에 도전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시장에 이제 막 발을 들인 공연계가 이번 시도로 저변을 넓힐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잠재 고객 발굴… 집중력도 상승

숏폼 콘텐츠는 MZ세대가 이끈 문화다.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초반 출생)와 Z세대(1990년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통칭하는데, 모바일로 콘텐츠를 즐기는 집단이다. 이들은 일과 여가를 풍부하게 즐기면서 틈틈이 콘텐츠를 소비하기 때문에 짧은 분량과 빠른 전개를 선호한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이미 숏폼 콘텐츠가 유통 시장의 중심이다. 지금은 공연계가 바톤을 이어받아 젊은 잠재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온라인 관객의 집중도와 호흡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며 “온라인 공연도 변화한 호흡에 발맞춰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연계에서 숏폼을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앞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연구팀에 따르면 공연 애호가라도 온라인 공연에 몰입하는 시간은 20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현장성이 중요한 공연예술 특성상 집중도는 극장 환경에서 비롯됐다. 소음이 적고, 조명이 어두운 극장과 온라인 환경은 달랐다. 숏폼 콘텐츠는 집중력 저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차별화…웹 뮤지컬도 등장 예정

분량이 짧고, 기승전결이 있으며, 영상으로 유통되는 콘텐츠 시장에는 이미 웹 드라마가 굳건히 버티고 있다. 숏폼 공연 콘텐츠만의 신선함이 성패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 시도였던 웹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는 웹 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클로즈업 등 영상 기법을 활용하다 보니 연극의 강점인 무대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현실감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장면이 전환되거나, 새로운 인물·장치가 등장할 때의 생생함도 편집돼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연극성이 묻어나는 장면도 있었다. 희주가 체육 시간에 선생님과 대치하다 교실로 장면이 전환될 때는 편집 없이 카메라가 바로 옆쪽을 비추면서 배우들이 한 공간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생동감이 전해졌다. 또 준호와 민지가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도 분할화면이 아닌 두 배우가 한 프레임에 잡혀 무대 예술의 묘미가 살아났다. 예술의전당은 “감각적인 영상을 위해 무대를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촬영했다”며 “연극성과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극본부터 연출까지 여러 가지를 고심했다”고 밝혔다.

웹 연극에 이어 웹 뮤지컬도 곧 모습을 드러낸다. EMK는 웹 뮤지컬 ‘킬러파티’를 오는 20일 샌드박스플러스에서 공개한다. 3일간 영상 9개가 공개되는데, 모두 10분 내외다. 뮤지컬은 드라마·연극과는 달리 음악이라는 요소가 가미된 만큼 영상으로도 공연 특유의 묘미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킬러파티’는 양수리 저택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추리과정을 담았다. 촬영 대부분을 배우들 각자의 집에서 진행됐다는 점도 신선하다. EMK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뮤지컬 진입 장벽을 허물고 대중화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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