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안과 밖, 역사가 흐른다

[책과 길] 장벽의 문명사, 데이비드 프라이 지음, 김지혜 옮김, 민음사, 408쪽, 2만원

‘장벽의 문명사’는 장벽이 문명의 성장을 가능케 한 안전함을 선물하는 한편 장벽 안 사람들을 유약하게 만들었음을 여러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장벽 밖 사람들은 “습격이 바로 농사”였고, “천막에서 태어나 전투에서 죽는” 걸 당연시했다. 장벽 안에 있는 이들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장벽에 기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때 효용이 다한 것으로 생각됐던 장벽은 21세기 들어 이민자와 테러를 막는다는 명분 등을 내세워 그 길이를 늘려가고 있다. ‘장벽의 문명사’ 저자 데이비드 프라이는 “새 밀레니엄 초기에 세계는 제2의 장벽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표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OST 중 ‘새장 속의 새(Vogel im kafig)’는 작품 속 인류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체모를 거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대한 성벽을 쌓았지만, 성벽을 벗어날 자유는 얻지 못한 인류의 무기력한 처지를 새장과 새에 빗댔다.

책 ‘장벽의 문명사’에서도 동일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14세기 구블라(Gubla)의 왕 리브하다(Rib-hadda)가 성벽 안 자신의 신세를 두고 “새장 속의 새처럼” 갇혀 있다고 자주 불평한 것이다. 구블라는 성경에서 여호수아도 정복하지 못한 땅으로 언급되는 곳이다. 이처럼 장벽은 외부 침입자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지만, 침입자에 대한 두려움까지 없애진 못했다. ‘진격의 거인’ 내용처럼 자주 뚫리기도 했다.


장벽이 나눈 문명과 야만

‘장벽의 문명사’는 미국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대학 역사학 교수인 저자가 장벽을 중심에 두고 풀어 쓴 문명사라 할 수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가 쌓은 장벽과 이를 둘러싼 역사를 훑어낸다. 4000년도 더 된 시리아 황무지에 있는 고대 장벽에서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쌓은 장벽까지 역사 속에 뻗어 나간 장벽을 두루 다룬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장벽보다 더 문명 건설에 공헌한 발명품은 없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장벽은 문명과 함께 시작됐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탄생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4000년 전부터 땅에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그 지역은 진흙 벽돌을 구울 연료가 부족해 벽돌을 햇볕에 말려야 했다. 가끔 내리는 비에도 흙이 씻기는 바람에 수로가 막히기 일쑤였지만 메소포타미아 왕들은 거의 모두 최소 하나의 도시 성벽을 건설했다.

장벽 건설 붐은 초기문명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원전 5세기 데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를 요새화하는 노력을 주도했고, 자금 마련을 위해 동맹국들을 압박했다. 중국에선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통일한 이후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해 명나라까지 이어진다. 로마에선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재위 기간(21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장벽을 확장한 데 이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역시 장벽 쌓기에 몰두한다.

흙과 돌을 나르며 장벽을 쌓은 남성들이 농부, 사제, 조각가, 측량사, 석공, 수학자, 철학자 등의 직업으로 분화하며 문명을 건설한 반면 장벽 밖 남성들은 모두 전사였다. 장벽 밖의 시선으로 볼 때 장벽 안 사람들이 문약한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로마에 고용된 용병이었던 갈리아인 등이 고용주를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그리스에서도 아테네와 달리 장벽을 쌓지 않고 ‘인간 장벽’을 앞세운 스파르타는 장벽 안을 ‘여성의 처소’라 일컬었다.

장벽 밖 역사에서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 된 이들은 중국, 중동, 유럽에 걸쳐 있었던 초원지대의 기마 유목민들이었다. 그들의 위협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세 지역에 설치된 장벽의 길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북쪽의 초원 지대와 남쪽의 도시 문명을 가르는 대략 5000마일(약 8046㎞)에 이르는 접경을 따라 사실상 열릴 수 있는 곳은 모두 시기를 달리하며 성벽으로 차단되었다.” 저자는 칭기즈칸의 몽골처럼 근대 이전 초원 지대에서 여러 부족이 하나로 조직될 때 “거의 원자탄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했다”라고 적고 있다.

반면 수비자로서의 장벽 안 사람들과 공격자로서의 장벽 밖 사람들의 관계가 상반된 곳도 있었다. 신대륙에선 화약으로 무장한 장벽 건설자들(유럽인)이 장벽을 쌓지 않은 전사들(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역사적 양상의 역전”이라고 했다.

장벽의 실패와 재등장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은 이슬람 세력을 막는 상징적 장벽 역할을 해온 동로마제국의 붕괴이자 물리적 장벽 자체의 실패를 함께 의미했다. 열두 살에 술탄이 된 마호메트 2세는 황소 60마리와 200명의 사람이 끌었던 거대한 대포를 앞세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견고한 장벽을 무너뜨렸다. 문명사에서 하나의 상수였던 도시 성벽이 낮아지는 순간이었다. “도시 성벽은 말과 화살, 용기로 무장한 다른 부류의 적을 막는 방어 시설로 고안되었다. 유럽에서 그런 부류의 적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조만간 유라시아 전역에서 사라질 터였다.”

유구한 역사를 지난 중국 만리장성 역시 현대로 오면서 방어 시설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전락했다. 만주사변 이후인 1933년 일본 관동군은 만리장성 동쪽 끝 관문인 산하이관을 점령한 후 닝커우관을 돌파하며 만리장성을 무력화시켰다. 장벽 형태는 다르지만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프랑스의 마지노선도 1943년 독일군이 아르덴 숲으로 우회해 침공하면서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저자는 “마지노선이 남긴 진정한 유산은 어리석음을 뜻하는 상징적이고 보편적인 표현이며, 역사의 오용을 보여주는 하나의 확고한 표본”이라 비판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장벽의 중요성이 한층 더 낮아졌지만 최근에 가까워지면서 장벽은 다시 늘고 있다. 이민자 유입을 막고, 테러를 방지한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저자는 이같은 상황을 두고 “제2의 장벽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표현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2003년 예멘과의 접경에 1100마일에 이르는 장벽 건설 작업에 착수한 것을 비롯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봉기에 맞서 2002년 450마일 길이의 장벽을 건설한 후 그 길이를 더 늘렸다. 요르단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와의 국경에 287마일의 장벽을 쌓았고, 인도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를 막기 위해 장벽 길이를 지속적으로 늘렸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장벽 건설은 미국과 유럽도 예외가 아니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오바마 대통령을 거치면서 계속 확대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은 트럼프 대통령으로 오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유럽에선 2013년 불가리아가 터키와의 접경에 100마일 길이의 울타리를 건설한 후 ‘두더지 게임’처럼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곳을 지속적으로 틀어막고 있다. 정치적 이유 외에 미국의 말리부, 히든 힐스, 베벌리 파크 등의 부촌에서 장벽 길이를 늘리는 것도 ‘제2의 장벽 시대’를 강화하고 있다.

‘장벽의 문명사’는 장벽이라는 키워드로 문명사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인류에게 장벽의 의미와 한계, 오늘날 장벽의 재등장에 대해서도 역사적 맥락에서 생각해보게 한다. 다만 군데군데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탈자가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단점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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