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에 긴 생명 불어넣는… 흥미로운 미술 보존가의 세계

[책과 길]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김은진 지음, 생각의 힘 / 304쪽, 1만7000원


“미술품 보존가는 보람이 없는 직업이다. 가장 잘 하는 것이 티 나지 않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았을 때는 후세에 명작을 남겨 주지 못했다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에서 인용한 독일 미술사가 막스 프리들렌더의 말은 ‘잘 해야 본전’인 미술 보존가의 숙명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다소 야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아무리 잘 해도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그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처지, 원래 작품으로 완벽하게 되돌릴 수 없는 한계 등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미술 보존가인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과학자도 예술가도 아닌 애매한 자리는 아직도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라고 적기도 했다.

‘예술가의…’는 이 애매하고 막연한 미술 보존가와 미술 보존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이다. 국내에서 공식 활동하는 미술 보존가 10여 명 중 한 명인 저자는 예술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에 긴 생명을 불어넣는 보존가와 미술 보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득 풀어놓는다.

앞서 인용한 프리들렌더의 말처럼 미술 보존 작업은 뒷말을 남기기 십상이다. 보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훼손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자주 뒤따랐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퇴색이 작품의 가치를 더하고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믿음도 한몫했다. 제2차세계대전을 치르는 중에도 미술품 보존 작업을 진행한 영국에선 너무 선명해진 색상이 반감을 불렀다. 1994년 15년간의 보존처리가 끝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역시 “역사의 흔적을 지워버렸다”라는 비판 등을 받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에 탄생한 현대 미술작품에 대한 보존 문제도 눈길을 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 작품 ‘다다익선’은 1988년 브라운관 텔레비전으로 만들어 하나둘 꺼져 가지만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다. 오래된 회화나 조각보다 복원이 힘든 것이다. 저자는 “종이는 1000년을 가고 비단은 500년을 간다고 하였던가. 백남준의 이 작품은 30년을 근근이 버티었다”라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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