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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신승훈, 부단한 노력·발전으로 더 빛나

[한동윤의 뮤직플레이]

지난 1일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신승훈은 과거 업적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음악적 다양성을 추구해왔다. 신승훈은 데뷔 30주년을 맞아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자전거처럼, 앞으로의 저의 행보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시 컴퍼니 제공

그야말로 돌풍이었다. 1991년 번화가 곳곳은 신승훈의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채워졌다. 음반 가게와 소위 ‘길보드’라 불린 불법 음반 노점상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신승훈의 노래를 연신 틀어댔다. 커피숍, 술집 등 젊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영업장에서도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빈번하게 흘러나왔다. 1990년 11월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몇 개월의 정체기를 지나 초특급 히트곡으로 거듭났다. 이에 힘입어 신승훈은 1991년 여러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

이후에도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신승훈이 앨범을 냈다 하면 거리와 음악방송 1위는 어김없이 그의 차지였다. 2집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은 SBS ‘인기가요’에서 무려 14주 연속으로 정상에 머물렀다. 데뷔 앨범으로는 가요 역사상 처음으로 1백만 장 넘게 팔린 1집을 비롯해 7집까지 일곱 장의 음반이 연달아 밀리언셀러 대열에 들었다. 연말 가요 행사에서 트로피를 가져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로써 신승훈은 ‘발라드의 황제’라는 칭호를 획득하게 됐다.

90년대 들어 가요계는 댄스음악 대홍수를 이뤘음에도 신승훈의 위상은 견고했다. 거센 물살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음악이 강한 대중성과 본인만의 스타일, 탄탄한 작품성을 두루 겸비한 덕분이다. 그는 대중음악의 보편적 소재인 사랑 얘기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갔고, ‘소녀에게’,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같이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표하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 태도를 고수해 보통의 발라드와 구분되는 독자성을 나타냈다. 그가 직접 지은 곡들은 진행이 매끄러웠으며, 선율도 귀에 잘 익었다.

항상 여린 발라드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기에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가 고착됐지만 2집부터는 다른 장르도 꾸준히 선보였다. ‘날 울리지 마’(뉴 잭 스윙), ‘처음 그 느낌처럼’(하우스), ‘내일이 오면’(레게), ‘내 방식대로의 사랑’(맘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드럼앤드베이스), ‘꿈속의 그대’(얼터너티브 록), ‘엄마야’(디스코) 등이 다채로운 시도를 서술해 준다. 신승훈은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펼치는 중에도 변화에 열성적이었던 것이다.

새로움을 찾는 노력은 새천년에 넘어와서도 계속됐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스리 웨이브스 오브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라는 프로젝트로 발표한 석 장의 미니 앨범을 통해서는 각각 모던 록, R&B를 가미한 팝, 브릿팝과 R&B를 집중적으로 들려줬다. 또한 이 작품들을 기점으로 창법도 조금 더 부드럽게 바꿔 나갔다.

가요계에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을 세웠으며,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한 거성이지만 신승훈은 과거의 업적에 안주하지 않는다. 데뷔 때부터 자신의 노래로 앨범을 제작한 비범한 싱어송라이터는 프로듀서로 성장한 데 이어 타성을 경계하면서 음악적 다양성 확보에 성실히 임했다. 이 움직임은 올해 발표한 미니 앨범 ‘마이 페르소나스’에서도 이어졌다. 부단한 단련과 가시적인 발전으로 데뷔 30주년이 더욱 빛나 보인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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