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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서울대 정시 입시안 ‘죽음의 트라이앵글’ 불러낼까

[이도경의 에듀 서치]


고교생들이 서울대의 ‘2023학년도 대학 신입학생 입학전형 예고사항’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학생들을 교실이 아닌 헌재로 향하게 한 1차 원인은 문재인정부가 난도질한 대입 정책에 있습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했다가 정시를 30%로 의무화했고, 몇몇 대학은 다시 40%로 올리는 등 국가 인재 정책을 마음대로 들쑤셔놨죠. 서울대의 2023학년도 입시안은 이에 대응한 측면이 큽니다. 그래서 크게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불쌍합니다. 오죽 억울했으면 헌재로 달려갔을까요.

서울대를 희망하는 소수 학생들의 얘기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일단 서울대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서울대의 학생 선발 방식은 다른 주요 대학들에도 영향을 끼치죠. 게다가 이번 입시안은 의미심장합니다. 대학마다 수능 점수나 내신 성적, 비교과 실적, 면접, 논술 같은 전형 요소들을 자율적으로 조합해 뽑을 수 있는 길을 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했고 지난 정부에서도 유지해온 ‘대입 전형의 단순화’ 원칙을 허무는 시도로도 볼 수 있는 것이죠.

서울대의 2023학년도 입시안을 뜯어볼까요. 지금까지 정시는 수능 점수만으로 뽑았습니다. 내년인 2022학년도는 수능 점수 100%에 학생이 이수한 과목에 따라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살짝 틀었습니다. 그리고 2023학년도에는 본격적으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교과평가’를 도입합니다. 이 교과평가에는 ‘교과 이수현황’과 ‘교과 학업성적’,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반영합니다. 비교과를 빼고 고교 내신성적을 정성평가하겠다는 말이죠.

서울대 정시에서 학생부를 본다니 교사단체들은 좋아하죠. 그러나 학생·학부모는 다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고1부터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정부의 정시확대 기조를 고려해 고교를 선택한 학생·학부모들은 황당하죠. 문재인정부 내내 대입 정책이 오락가락했는데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겁니다. 서울대 발표 직후 교원단체들이 환영 입장을 내놨고 교육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교육부로선 교사단체의 조직적 저항이 없는 입시안이니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여길 수 있겠습니다. 학생·학부모 입장에서 생각하면 비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입 전형 단순화 얘기를 해보죠. 학생·학부모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생겼습니다. ‘수시는 학생부, 정시는 수능 위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수시모집 비율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수천 종류의 대입 전형이 난립했고 학생·학부모 부담이 증가하자 도입됐습니다. 만약 다른 대학들도 서울대 2023학년도 정시처럼 전형요소 다양화에 나서면 이 원칙은 무용지물이 될 겁니다. 전형요소를 다양화할 수 있다면 수시와 정시의 구분도 사실상 무의미해지죠. 전형요소의 반영 비중에 따라 먼저 뽑는 트랙과 늦게 뽑는 트랙 정도로 나뉘는 겁니다.

이는 ‘수시와 정시 통합+수능 상대평가 조합’과 흡사한 느낌입니다. 지난 대입 공론화에서도 검토된 방안입니다. 이 방안은 여러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조기에 탈락했습니다. 학생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죠. 공론화 과정을 이끌었던 고위 관계자는 당시 “학생부, 수능, 교과내신 등 평가요소의 칸막이가 허물어질 수 있고, 학생이 이를 모두 준비해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죠.

전형요소의 다양화와 수시와 정시 통합, 과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다만 비슷한 시도가 고려대에서도 있었죠. 정부가 대입을 이리저리 흔들자 고려대는 2021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에서 학생부교과전형을 대폭 늘렸습니다. 학생부교과전형은 고교 내신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입니다. 주로 학생 선발이 어려운 지방대에서 많이 활용하며 교사단체들이 권장하고 있습니다.

고려대는 학생부교과를 30% 이상으로 올리면 정시에서 30%를 뽑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규정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죠. 내신 ‘위주’ 전형이니 고교 내신성적은 51%만 반영하면 됩니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에 내신성적, 서류평가, 면접 등 다양한 전형요소가 결합된 ‘괴물 전형’이 탄생했습니다. 지금처럼 교육부가 손 놓고 있으면 대학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서울대의 새 정시모집 방식에서 학생부 비중이 적으므로 수능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섣부른 예단이라고 봅니다. 일반전형을 봅시다. 1단계에서 수능 100%로 2배수를 뽑고 2단계에서 수능 80%, 교과평가 20%로 합격자를 가립니다. 실제 반영비율도 8대 2일까요. 교과평가는 평가자 두 명이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AA부터 CC까지 5점 차이를 만듭니다. 수능 점수는 최고점과 최저점이 20점 이상일 경우와 20점 미만일 경우가 다른 공식이 적용되는데 서울대 지원자 수준을 고려하며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합격권이 5점 이내로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면 교과평가의 실질 영향력은 20% 수준을 훨씬 넘어설 겁니다. 수능 점수대로 뽑는 게 아니라 학생부종합전형처럼 뽑고 싶은 학생을 뽑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2023학년도에 뚜껑을 열어봐야겠죠. 다만 분명한 건 학생 부담이 늘어나는 점입니다. 수능부터 내신성적, 각종 교내 활동 등 ‘팔방미인’을 강요받는 학생들이 측은할 뿐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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