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필름에 담은 1930년대 미국의 어두운 자화상

[영화 리뷰] 데이비드 핀처 감독 신작 ‘맹크’

영화사에서 명작으로 꼽히는 ‘시민 케인’의 탄생기를 그린 넷플릭스 영화 ‘맹크’의 한 장면. ‘파이트클럽’ 등 유수의 작품을 선보여온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신작인 영화는 CGV·롯데시네마가 처음 넷플릭스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2011년 경매에 나온 영화 ‘시민 케인’(1941)의 아카데미 각본상 트로피는 무려 86만1542달러(약 10억원)에 낙찰됐다. 정치 권력과 결탁한 신문재벌을 통해 자본주의의 허상을 꼬집은 이 작품이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명작이기 때문이다.

18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고 다음 달 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영화 ‘맹크’는 이 ‘시민 케인’의 탄생기를 다큐멘터리처럼 풀어낸 작품이다. ‘파이트클럽’ ‘세븐’ ‘나를 찾아줘’ ‘에이리언3’ 등 수많은 수작을 선보여온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신작으로 앞서 CGV·롯데시네마가 넷플릭스 영화로는 ‘힐빌리의 노래’와 함께 처음 극장 상영을 결정해 화제를 모았다. 근래 보기 드문 흑백 영화이기도 하다.

‘맹크’는 핀처를 스릴러 명장으로 기억하는 관객에게는 낯설 작품이다. 대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 드라마 장르의 핀처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선물 같은 영화가 될 듯하다. 감독은 1930년대 미국에 드리운 그림자를 찬찬히 살피면서 대작의 운명적 탄생을 유려하게 펼쳐 놓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시민 케인’을 제작·감독하고 주연한 오손 웰스가 아닌 시나리오를 집필한 허먼 J. 맹키위츠(게리 올드만)다. 영화 배경은 할리우드가 태동하던 1930년대. 재치 섞인 독설을 풀어놓는 괴짜 맹키위츠는 술에 절어 살면서도 재능 덕분에 대형 제작사 MGM에 들어간다.

하지만 시대의 격랑은 그를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 미국 경제 대공황은 바다에 식료품을 버리면서도 굶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역설적인 상황을 만든다. 부의 쏠림은 이내 정치 갈등으로 번진다. 공화당은 민주당을 ‘사회주의자’라며 매도하고, 황색 언론으로 부를 쌓은 랜돌프 허스트(찰스 댄스)에게 돈을 받는 영화계는 공화당의 미디어를 자임한다. 술 합병증으로 55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맹키위츠는 투병 중에 허스트(신문재벌)의 얘기를 써 내려간다. ‘시민 케인’의 시작이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건 절제된 호흡이다. 핀처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 덕에 맹키위츠 캐릭터는 생동감 넘친다. 게리 올드만을 비롯해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배우의 열연도 돋보인다. 다만 과거 회상을 위한 끊임없는 플래시백으로 인해 배경 지식이 없으면 단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 촬영은 맹키위츠가 실제로 각본을 쓴 캘리포니아의 한 목장에서 이뤄졌다. 연기효과를 넣으려 직접 불을 피우는 장면부터 조명, 카메라 등 하나하나 재현한 과거 촬영현장도 볼거리다. 무엇보다 감독이 고집한 흑백 필름이 1930년대의 낭만과 고뇌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앞서 넷플릭스를 “창작의 자유가 있다”고 평가한 핀처는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인기 넷플릭스 시리즈 제작·연출을 맡았었다. ‘맹크’도 흥행이 어려운 흑백 영화라는 이유로 20여년간 제작이 무산됐었다가 넷플릭스에서 빛을 보게 됐다.

‘맹크’는 과거 시나리오 원작자 논쟁을 일으킨 에세이 ‘레이징 케인’(1971)을 접한 핀처가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아버지 잭 핀처에게 은퇴 후 써보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2003년 타계한 아버지의 유작이어서일까. 영화는 맹키위츠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묻어난다. 맹키위츠가 영화 제작자에게 건네는 뼈 있는 대사가 핀처를 대신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인간의 인생을 2시간에 담을 순 없어. 인상이라도 남기면 성공이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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