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감사로 향하는 흔들리지 않는 시선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고린도 교회만큼 많은 문제가 있는 교회도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선물로 주신 많은 것이 분쟁 거리가 됐다. 특히 은사로 인한 갈등은 큰 문제였다. 은사마다 나름의 서열이 부여되고, 은사를 자랑하고 서로 시기하는 일들이 빈번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으로 바울은 ‘사랑장’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8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가진 문제의 근원이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신 은사들까지도 결국 폐하여지고 말 것이라 상기한다. 어떠한 놀라운 은사라 할지라도 결국 영원하지 않고 다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신 신령한 은사들이 그렇다면, 하물며 우리가 아등바등하며 붙들고 있는 이 땅의 것들은 어떠하겠는가.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시간 죽음 슬픔 장례식 등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코로나19 앞에서 인간은 유한하며,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사람들이 다시 확인하게 됐다는 사실에서 그러한 전망의 이유를 찾는다.

바울은 이렇게 좁은 시야를 가진 고린도 교인들을 어린아이에 빗댄다. 그들은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처럼 여기고, 부분적인 것을 온전한 것처럼 여겼다. 어린아이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이 땅의 삶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경험과 이해의 폭에는 늘 한계로 가득하다. 어린아이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항상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문제가 전부일 뿐이다. 나이가 들고 장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긴 호흡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갖는 것이다. 그러한 시야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사실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마주할 때야, 우리가 수수께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는 무수한 퍼즐 조각을 집어 들고 평생 골몰하며 씨름할 뿐이다. 바울은 지금은 우리가 모든 것을 희미하게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때, 마치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라 말한다. 부분 부분의 퍼즐 조각들이 맞추어져 전체를 온전히 보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부분적인 것과 온전한 것의 경계선에 있다. 그것은 지금과 그때라는 시간의 간극이기도 하다. 그 간극이 완전히 좁혀져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향한 온전한 사랑을 베푸셨다. 비록 우리는 그분을 희미하게 바라보지만,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또한 그분을 대면하여 뵙고 알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켰다. 할 수만 있다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2020년은 그야말로 눈물과 탄식으로 가득한 수수께끼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주신 그분의 사랑이 영원하고 온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발견하는 감사의 제목들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들이며, 결국 다 지나가고 말 것이다. 그것을 감사의 근거로 삼는다면 우리의 감사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원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감사의 기초가 돼야 한다.

(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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