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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코브라 역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영국은 식민지 인도의 수도 델리에 서식하는 코브라를 멸종시키기 위해 포상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자 상금을 더 받기 위해 코브라를 사육하는 인도인들이 늘어났다. 정책 실패로 포상금을 폐지하자 길거리는 이에 실망한 인도인들이 내다버린 코브라로 넘쳐났다. 이처럼 좋은 의도에서 시행한 정책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을 ‘코브라 역설’이라고 부른다. 외환위기 와중에 들어선 김대중정부는 2000년대 초반 세원 발굴을 위해 복권사업, 소득공제 등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폈다. 그러나 길거리 모집, 경품 제공 등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신용불량자가 폭증하면서 한국판 코브라 역설인 ‘카드대란’을 겪어야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정부도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런데 서민을 위한 ‘착한 정책’들을 너무 서두른 나머지 부작용으로 돌아오지 않을지 짚어볼 때가 됐다. ‘착한 임대료’ 정책에 이어 정부와 여당이 내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하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 대책은 그래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그 이면을 보면 정부가 보호하려는 저신용 서민들이 오히려 제도권 대출시장에서 쫓겨나고 상대적으로 고신용자들만 금리 혜택을 보는 역효과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연 20%를 넘는 금리로 돈을 빌린 사람이 239만명에 달한다. 최고금리를 현행 연 24%에서 4% 포인트 낮추면 208만명(87%)이 매년 4830억원의 이자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금융위 추산이다. 이에 대부금융 업계와 전문가들은 산술적 계산일 뿐 내리는 이자율을 소급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대출자들은 혜택을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게다가 대부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되면 신규 대출이 거의 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최고금리를 연 27.9%에서 연 24%로 내린 뒤 1만2000개였던 전국 대부업체 수는 8000개로 3분의 1이나 줄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대부금융협회 등록 회원사 26곳 중 11곳은 사실상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나이스신용평가 보고서를 보면 9등급 대출이 불가능해지면서 100만여명의 잠재고객이 사라졌다.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 심사가 강화되고 연체율이 늘면서 업체들이 감내할 수 있는 대손충당비율이 15~16%에서 12%로 줄어든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금융위 산하 한국신용정보원의 신용정보집중관리위원인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연 20%로 더 낮출 경우 살아남는 업체는 2000곳에 불과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대부금융협회는 높은 조달금리(6%)와 연체율을 고려한 대손충당금 적립비율(14%), 일반관리비(4%), 대출중개인 수수료(4%) 등을 감안하면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는 업체들이 넘쳐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특단의 보완책 없이 최고금리 인하를 강행할 경우 서민 금융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7~10등급뿐 아니라 600만명으로 추산되는 5~6등급자들도 최종 보루인 대부업체가 줄어들 경우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5~6등급은 대학을 갓 졸업하는 사회초년생이나 자영업자가 대부분을 차지해 경제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서민금융기관을 국유화하지 않는 이상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정책의 이면에 은행업 저축은행업 대부업 등 금융업권별로 차등화된 기능이 있음에도 높은 금리를 취급하는 업권을 ‘악’으로 치부하려는 이분법이 자리잡은 건 아닌지 되돌아볼 때가 됐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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