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건제, 하나님·이웃과 관계 회복을 위한 가르침

[순복음삼마교회 ‘모세오경 아카데미’ ⑤] 속건제를 통한 훈련

일러스트=박예림

2007년 영화 ‘밀양’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뭘까.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위선자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기독교가 이렇게 됐을까.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세오경을 소홀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위기에선 신앙생활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가르치는데, 특히 속건제를 통해 하나님께 실수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배상하고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사람에게 반드시 배상하라고 말씀한다. 속건제의 정신을 잃어버리면 기복신앙으로 흐르고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다. 속건제의 진정한 영적 의미는 뭘까.

첫째, 속건제는 ‘축복의 선물’임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걷어내는 일이다.(사 59:2)

속건제는 하나님으로 가는 길에 장애물을 걷어내는 것이다. 종종 TV에서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본다. 청문회에서 그들의 죄가 드러나면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도 본다. 과오가 있으면 국가의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하나의 국가를 섬기는 일에도 깨끗하지 못하면 자격을 잃는데 하물며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어떨까.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고 싶다면 깨끗해야 한다.

성경적으로 교회에서 성도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징계는 헌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도 나온다. 가인이 제물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다. 이사야 1장과 말라기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제사나 헌물을 받지 않겠다고 화를 내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흠이 있거나 제물에 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속건제를 드린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축복의 선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배와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둘째, 속건제는 돈으로 배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잘못했으면 하나님께 배상하고, 사람에게 잘못했으면 원금의 25%를 더해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죄를 율법적으로 무겁게 다루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 모든 죄가 해결됐다. 자유인이 됐고 죄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동시에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깨달아야 한다.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사 53:10)

속건제는 땅에서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 돈으로 배상하는 것이다. 벌금으로 죄를 해결하는 건 쉬운 일이다. 사람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있다면 빨리 갚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이 얼마나 큰지 훈련해야 한다.

셋째, 그럼 배상은 언제 하는가. 성물에 손해를 끼쳤을 때, 부지중에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죄를 범했을 때, 이웃의 물건을 도둑질했을 때, 이웃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각종 예물이나 십일조를 바치지 못했을 때 등이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십일조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심지어 십일조는 율법이기 때문에 폐지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런 십일조를 받으시겠는가.

십일조의 유래를 알게 된다면 달라질 것이다. 십일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됐다. 당시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 연합군과 싸워 승리의 전리품을 가져왔다. 그중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이 시작이다. 그 싸움은 아브라함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연합군이 대패하고 왕들은 모두 산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 아브라함이 318명을 갖고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대승했고 그 전리품 중에 십일조를 드렸다.(창 14:20)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드릴 필요가 없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넷째, 왜 배상하라고 하신 것일까. 바른 관계를 위해서다. 속건제는 하나님과 이웃과 관계를 회복해 관계가 개선되고 공동체가 하나 되기 위한 것이다. 또 양심의 해방을 위한 것이다. 우리 안에 죄가 있으면 이름 모를 죄라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세상을 밝게 살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속건제가 이뤄지면 교회가 밝아지고 성도들의 모습이 환해진다.

이일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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