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 분노의 시대 치유할 용기

온유함으로 답하다/스캇 솔즈 지음/정성묵 옮김/두란노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코리 텐 붐 여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해 자신을 가뒀던 수용소의 간수를 용서할 수 있었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앞에 조성된 ‘추방의 정원’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 촘촘히 세워진 콘크리트 기둥 때문에 하늘이 십자가 모양으로 보인다. 픽사베이

누군가 내 약점을 꼬투리 잡아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든 당사자에게 갚아주거나, 무시하는 편을 택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은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댄 크렌쇼의 반응은 달랐다. 크렌쇼는 2018년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피트 데이비슨이 코미디쇼에서 안대를 쓴 자신의 모습을 조롱했는데도 의연했다. 오히려 데이비슨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격려와 위로를 전했다. 대중이 해군 특수부대 출신 전쟁 영웅을 희화화한 데 분노해 데이비슨의 SNS에 집중포화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비난 메시지를 받은 데이비슨이 SNS에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글을 올리자 크렌쇼는 이렇게 당부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 당신을 이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 목적을 찾는 게 당신의 임무입니다. 그 목적대로 사십시오.” 이후 두 사람은 코미디쇼에 같이 출연해 화해의 악수를 나눈다. 녹화를 마친 뒤 데이비슨은 카메라가 꺼진 줄 알고 크렌쇼에게 다가가 이렇게 속삭였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책은 지난 2월 국내에 출간된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그리스도인이 갖출 것을 강조했다면 이번엔 “분노가 모국어가 된 분노 사회”에서 온유하게 응대할 것을 주문한다.

미국 내슈빌 그리스도장로교회 목사인 저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크렌쇼처럼 공격보다는 온유한 대답으로 첨예한 대립 국면을 풀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족과 동료 간의 갈등뿐 아니라 인종 신앙 계급 등으로 누군가에게 거부당할 때, 세대 이념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받을 때도 그렇다. 그리스도인의 본보기인 예수는 어떤 갈등 상황에서도 온유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군과 적군으로 나뉜 세상 속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반응이 온유해야 하는 궁극적 이유”다.

온유함을 나약함과 결부해 생각하기 쉽지만, 예수가 보인 온유한 대응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온유한 대답에는 “가장 큰 용기와 영웅적인 종류의 믿음이 필요”하다. 가해자의 잘못이 클수록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용기와 믿음의 강도는 더 세진다.

유대인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코리 텐 붐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돌며 예수의 용서를 주제로 간증했다. 붐 여사가 독일에서 강연을 마친 어느 날, 한 남성이 찾아와 자신을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간수’였다고 소개한다. 그 수용소는 붐 여사와 언니가 갇혔던 곳이었고, 그 남성은 거기서 가장 잔혹한 간수였다. ‘저를 용서할 수 있나요’라고 남성이 손을 내밀자, 붐 여사는 망설이다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용서한다”고 말했다. 훗날 붐 여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토록 강렬한 사랑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것이 내게 나온 사랑이 아님을 알았다. 그건 성령의 능력이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도 인종 차별이란 불의에 온유하지만 강력하게 맞섰다. 킹 목사는 자신을 용서한 하나님이 모든 불의를 바로잡을 것을 믿었기에, 자신을 모욕하고 공격한 백인에게 무력으로 보복하지 않았다. 극우파 백인 남성의 총기 난사로 희생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교회 성도 9명의 유족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아들을 잃은 한 엄마는 2017년 법정에서 마주한 가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았어요.… 그렇지만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길.”

팬데믹 시대를 맞아 분노가 일상화되고 있다.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는 모든 논쟁거리가 곧 분노할 것들이다.… 이제 분노는 이상 현상이 아니라 정상”이라고 개탄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한다. “그리스도인이 대담한 온유함을 보일 때, 이 분노한 세상은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제자라는 걸 알아차린다.… 세상은 분노에 부채질만 하는 가짜 종교를 원하지 않는다.”

책을 덮으며 묻게 된다.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 분노를 쏟아내는가, 아니면 온유함으로 답하는가.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