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진 TV 드라마, 속도감으로 위기 탈출?

최소 16부작서 8부작까지 확 줄여… 시청자들 짧고 굵은 콘텐츠 선호

16부작으로 굳어졌던 TV드라마가 짧아지고 있다. 8부작으로 편성된 tvN ‘산후조리원’. tvN 제공

최연소 여성 임원이 돼서야 최고령 산모가 됐다. 그렇게 원하던 임신이었는데, 하필 임원 승진 직후라니. 회사에서는 ‘아이 때문에 일에 집중 못 한다’는 눈총을, 산후조리원에서는 ‘이렇게 아이에게 관심 없는 엄마는 처음 본다’는 손가락질을 받지만 현진(엄지원)은 일과 아이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다. 현진이 산후조리원 동기들과 지지고 볶으며 성장해 나가는 격정 출산 느와르가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에 담겼다. 산후조리기간은 단 2주. 그래서 짧고 굵게 딱 8회로 편성했다. 관행으로 굳어졌던 16부작 중 절반을 뚝 떼어 버리고, 밀도를 높여 호평받고 있다.

TV드라마도 양보다는 질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대중화로 콘텐츠 향유 방식이 빠르게 변화했다. 일과 여가를 즐기며 틈틈이 소비할 수 있는 20분 내외의 숏폼(short-form) 콘텐츠가 급부상했고, 여기다 넷플릭스를 선두로 속도감을 앞세운 10부작 이내의 드라마가 줄줄이 쏟아졌다.

콘텐츠 홍수 속에서 TV드라마도 변화를 꾀했다. 5%를 넘기기 힘들 정도의 시청률 가뭄이 이어지는 위기에 맞닥뜨리자 16부작이라는 형식을 깨고 핵심만 압축해 제공하기로 했다. 1시간 내외의 1회 분량은 유지하면서 회차를 과감히 줄이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TV드라마는 최소 16부작으로 제작됐다. 이보다 적은 회차에는 광고 유치가 어려워 콘텐츠 감상 포인트가 빠르고 쫀쫀한 전개에 맞춰진 이후에도 쉽사리 분량을 압축할 수 없었다. 하지만 TV드라마가 전멸할 지경에 다다르자 유연해지기로 했다. 견고했던 16부작 관행이 어느새 12부작, 10부작 이제는 8부작으로 가벼워진 이유다.

드라마 회차 축소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넷플릭스 제공

시장을 선도한 건 넷플릭스다. 지난해 초 K좀비 열풍을 불러오며 세계적인 드라마 반열에 오른 ‘킹덤’시리즈가 대표적인데, 시즌당 6편으로 구성됐다. 이후 등장한 ‘인간수업’은 10부작, ‘보건교사 안은영’은 6부작이다. ‘킹덤’과 마찬가지로 적은 회차에 박진감을 담아 한 에피소드를 마무리 짓고, 호응도에 따라 시즌제로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10부작으로 몰입감을 높인 밀리터리 스릴러 OCN ‘써치’. OCN 제공
K좀비 명성을 이은 12부작 KBS ‘좀비탐정’. KBS 제공

방송사도 흐름을 이어받았다. 최근 종영한 밀리터리 스릴러물 OCN ‘써치’는 10부작, KBS ‘좀비탐정’은 12부작이었다. 두 작품 모두 장르물로 영화와 드라마를 결합한 드라마틱 시네마 형태인데, 각각 스릴러와 좀비라는 장르 특성상 유쾌한 속도감이 필수였다. 오히려 회차가 짧아진 덕에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16부작에서 벗어나니 여러 소재를 다룰 수 있어 장르가 다양해지는 이점이 있다”며 “예전에는 16부에 맞추다 보니 불필요한 에피소드가 삽입돼 지루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광고시장 침체도 회차 축소 이유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등장으로 콘텐츠 소비 패턴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다. 시청자가 짧고 굵은 콘텐츠에 매료되면서 TV드라마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이에 따라 방송사는 매년 드라마 작품 수를 줄였고, 드라마 사이 휴식기도 길어졌다. 드라마 편수가 줄어든 건, 수익성 악화에 따른 피치 못 할 선택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400억원대 제작비가 투입되면서 최근 업계의 관심을 모았던 하정우 주연의 드라마 ‘수리남’이 결국 넷플릭스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당초 10부작을 고려했으나 6부작으로 더 압축하기로 했다. 이렇듯 양질의 콘텐츠가 계속해서 넷플릭스로 쏠리는 탓에 방송사는 킬러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방송사는 드라마를 만들 때마다 적자가 쌓이는 구조가 됐다. 진부한 소재와 늘어지는 전개 탓에 시청률은 대부분 1~3%대를 맴돈다.

현재는 드라마 한 편당 수억원의 손해를 본다는 말이 돌 정도로 상황이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 광고를 받아야 수익을 낼 수 있는데, 보는 사람이 없으니 투자심리도 얼어붙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시청자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제작비는 늘고 있는데 광고는 줄고 있어 총체적 난국”이라며 “한 편당 평균 10억원이 드는데, 16부작을 끌어갈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TV드라마 위기 계속될 듯

방송가는 울상이지만, 드라마 시장 전체를 보면 오히려 활기를 띤다. 넷플릭스는 한류스타의 위상과 높은 완성도라는 이점을 지닌 K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자 한국에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다. 방송계에서는 TV드라마가 회차를 줄이고, 장르를 다양화하는 등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한동안은 넷플릭스의 독주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넷플릭스는 아예 몸집을 더 불려 드라마 시장을 장악할 모양새다. 올해 오리지널 드라마 총 5편을 선보인 넷플릭스는 내년엔 9편을 제작한다. 방송사로서는 넷플릭스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카카오TV도 견제 대상에 떠올랐다. 현재 카카오TV는 ‘연애혁명’을 중심으로 드라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내년에는 무려 드라마 15편을 선보일 계획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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