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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죽음과 청소’처럼 ‘죽음과 연애’는 꽤 닮았다

내일의 연인들 / 정영수 지음, 문학동네 / 236쪽, 1만3500원

정영수의 두 번째 소설집 '내일의 연인들'에 실린 표제작엔 관계의 죽음에 다다른 연인과 이를 바라보는 주인공 '나'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관계가 끝나버린 부부의 공간에 머물면서 "그 사람들은 정말 어쩌다 헤어졌을까?"같은 의문을 품으며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시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정리한다.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거나 혹은 새에게 주거나 하는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다한 다음에, 죽은 자는 죽은 자의 자리로 산 자는 산 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은 자를 청소하는 일은, 최선을 다해 예를 표함으로써 진행된다.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저자는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 청소가 직업이다. 그가 청소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죽은 물리적인 공간이다. 시신과 시신이 남긴 삶의 흔적이다. 그의 삶을 애도할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그가 출동할 일은 없다. 그가 일로서 마주하여 글로 골몰하는 죽음은 주로 고독사다. 홀로 사는 노인의 죽음이거나, 삶을 지탱해내지 못한 청년의 자살이거나. 작가는 이들의 죽음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에 모종의 죄책감을 갖는 동시에 매번 목도하는 죽음의 현장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다. 죄의식과 되물음은 문장의 양면이 되어 한 권의 책을 밀도 있게 채운다. 타인의 죽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죽음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청소란 헤어진 연인에게나 어울린다는 점에서 ‘죽은 자의 집 청소’에 이어서 읽을 책으로 ‘내일의 연인들’을 고른 건 조금 고약한 방향 전환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영수 작가의 소설집에서 주인공은 다소 무기력하거나 제멋대로이거나 생각이 많거나 할지는 몰라도 결코 죽지는 않는다. 도리어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보다 괜찮은 삶을 매일 꿈꾼다. 그럼에도 죽음과 연애는 꽤 닮은 구석도 있다. 삶은 죽음을 동반하고 연애는 실연과 한 쌍이며 삶이 그렇듯 연애도 끝 이후에는 존재하던 그 사람이 (눈앞에서) 없어진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표제작인 ‘내일의 연인들’을 보자. 주인공은 미래 같은 건 인식의 너머로 던져버린 채로 “온전한 현재자”의 삶을 택한 대학원생이다. 그리고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20대 후반 남성이다. 그러던 그에게 어릴 때 가깝게 지내던 누나(엄마 친구 딸)가 이혼 후 재산분할을 위해 매물로 내놓은 빌라에 임시로 머물러 줄 것을 요청한다. 그는 이제는 관계의 죽음에 다다른 부부의 공간에 머물며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어쩌다 헤어졌을까?”와 같은 의문문을 품는다. 본의 아니게 관리자가 되어 버린 빌라에서 주인공은 그냥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누나의 삶을 ‘청소’한다. 곰곰이 그리고 꼼꼼히. 도중에 자신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모습의 윤곽을 발견하는 일도 일견 멀리에 있지 않아 보인다.

‘우리들’의 공간은 ‘해방촌’이다. 도망치듯 떠난 상하이 생활을 다시 도망치듯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주인공은 의지와 계획 없이 하루를 산다. 짧은 편집자 경력이 있는 그에게 ‘정은’과 ‘현수’ 커플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고 찾아온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일상은 어른스러운 커플과 그 커플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나’의 안온한 시간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커플은 각자 따로 가정이 있는, 이른바 불륜 관계였고 우리들의 안온함이 계속될 수 없음이 스스로에게서 폭로되었을 때, 이 관계 또한 죽음을 맞이한다. 갑작스럽게 외따로 남겨진 나는 그들 대신 글을 쓰는 것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그에게 글은 제대로 끝내기 위한 행위이자 시작을 위한 준비에 다름 아니다.

제대로 끝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잘 죽고, 안녕히 헤어지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 죽음을 대신 치워주고 어떤 끝을 대신 쓰는 존재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특수청소라고 부른다. 그리고 덧붙여 그들을 작가라고 불러도 될까. ‘내일의 연인들’은 자꾸만 끝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 끝을 오래 생각할수록 더 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난 관계에 대한 애도의 나날 또한 속수무책 길어지고 있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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