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재열 (10) 예배당 새로 짓고 목회할 일만 남았는데 청빙이라니…

건물 매입 후 2년 공사 끝에 입당예배… 한 기도회서 뉴욕중부교회 후임 부탁

1994년 11월 캐나다 토론토 열린문교회 입당예배에서 김재열 목사와 성도들이 함께했다.

같이 갔던 장로님이 캐나다 은행 이사에게 하소연했다. “이사님, 교회는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코리안 이민자들이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것밖에 없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블루칼라입니다. 67만 달러도 대출을 받아야 만들 수 있는 돈입니다. 이게 최선입니다.” “거참… 그럼 한번 생각해 봅시다.”

1992년 간절한 기도 끝에 건물 키를 넘겨받았다. 캐나다교회 건물은 교육관만 지었지 본당은 손도 못 대고 부도 난 상태였다. 2년간의 공사 끝에 94년 11월 입당예배를 드렸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장로 5명을 세웠다. 교인이 450여명으로 늘어났다.

96년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포커너기도원에서 동부지역 목사장로기도회가 열렸다. 간절히 기도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이철 목사가 내 방을 찾아왔다.

“목사님, 의논할 게 있습니다. 제가 서울의 남서울교회 홍정길 목사님의 후임으로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뉴욕중부교회 후임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어제 김 목사님을 보는 순간 적임자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이고, 저와는 상관없습니다. 지금 토론토 열린문교회는 한참 성장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이 목사는 토론토에 집회를 왔다가 내가 담임하는 열린문교회가 부흥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잠깐 교회를 둘러봤다고 했다. “김 목사님, 기도라도 하시겠다고 약속만이라도 해주십시오. 정말 급합니다.” “네, 기도는 목사의 일이니까 해보겠습니다.”

집에 와서 얘기했더니 가족들이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나도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문이 퍼지자 토론토 열린문교회 성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강단에 서서 이렇게 선포했다. “이제 건축 마치고 편안하게 목회할 일만 남았는데 뭣 하러 험한 미국 뉴욕까지 가겠습니까. 저도 갈 맘이 전혀 없습니다.” 그날부터 나를 붙잡기 위해 장로 중심으로 비상 심야기도회가 열렸다.

그런데 그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토론토교회협의회 부회장이었는데, 정기총회 때 느닷없이 다른 사람이 회장에 선출됐다.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동승계가 원칙인데, 갑작스러운 회장 선출로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

‘거참, 이상하다.’ 이어서 캐나다 노회 성경학교 교수 명단에서 빠져버렸다. 강의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도 아니었는데, 새 학기 강의가 모두 없어졌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토론토 교계 광고에서 내 사진이 지워진 것이다. 그리고 뉴욕의 신문광고에 내 사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뉴욕중부교회 집사 중 한 사람이 내가 무조건 후임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토론토 교계 신문에 전화해서 내 얼굴 사진을 삭제해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뉴욕에 있는 교계 신문에 전화해 뉴욕중부교회 담임목사 얼굴 사진으로 내 사진을 넣었다고 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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