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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가상 경계 허무는 K팝… 뉴노멀 通할까

SM, 새로운 걸그룹 ‘에스파’ 데뷔

지난 17일 데뷔한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aespa)’는 멤버 4명에 각 멤버에 대응하는 아바타가 존재하는 콘셉트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17일 SM엔터테인먼트가 6년 만에 선보인 신인 걸그룹 ‘에스파(aespa)’는 4인조이면서 8인조다. 카리나, 윈터(이상 한국), 지젤(일본), 닝닝(중국) 4명의 멤버 그리고 각 멤버에 대응하는 아바타 ‘ae(아이)’가 추가된다. 아바타의 이름은 ‘아이-카리나’처럼 멤버 이름에 아이를 붙인다. 일상에서 영역을 확장하는 ‘메타버스(metaverse·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에 주목해 현실과 가상의 멤버를 동시에 선보인 것이다.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에스파의 세계관은 게임과 영화를 떠올린다. 이는 데뷔에 앞서 공개한 티저 영상, 데뷔곡 ‘블랙 맘바’ 뮤직비디오에서도 잘 드러난다. 티저 영상에서 현실 멤버와 아바타는 인공지능 시스템인 ‘나비스’의 도움을 받아 서로 소통한다고 소개됐다. 뮤직 비디오와 가사에선 멤버 4명과 각 아바타의 연결을 방해하는 존재가 ‘블랙 맘바’로 그려진다.

이들의 콘셉트와 세계관은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의 말에서 먼저 확인됐다. 그는 지난달 28일 제1회 세계문화포럼에서 “에스파는 셀러브리티와 아바타가 중심이 되는 미래 세상을 투영해,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를 초월한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개념의 그룹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룹 안에서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그러나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때로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는 등 다채롭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활동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이성수 대표도 지난 21일 ‘COMEUP 2020’ 기조연설에서 “에스파는 물론 SM의 모든 아티스트들이 ‘SM 컬처 유니버스’라는 거대 세계관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문화를 통해 꿈, 가상 현실, 우주와 현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더욱 넓은 무대에서 그들의 음악과 콘텐츠를 선보이게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에스파 멤버 중 한 명인 카리나와 그의 아바타인 ‘아이-카리나’가 대화하는 티저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영상 캡처

에스파의 등장은 메타버스로 일컫는 가상의 영토가 넓고 깊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초월과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손쉽게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부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이 결합된 현실에 없는 별도의 가상 세계를 의미한다.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첫 등장했다. 영화 ‘매트릭스’ ‘레디 플레이어 원’ 속 가상 공간을 떠올리면 된다. 가상 세계에서 아바타로 상호 작용하며 일상을 보내 인기를 끌었던 게임 ‘세컨드 라이프’는 메타버스의 좋은 예다. 최근엔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도 인기를 끌고 있다.


현실과 가상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K팝 가수들의 활동 무대도 확대됐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9월 미국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른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게임 ‘포트나이트’ 내 일종의 소셜 공간인 ‘파티로얄’에서 첫 공개했다. 같은 달 2일에는 블랙핑크가 글로벌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와 협업한 ‘아이스크림’ 댄스 퍼포먼스 비디오를 공개했다. 블랙핑크 멤버 4명의 아바타에 셀레나 고메즈의 아바타가 더해진 협업 무대가 완성됐다. 버추얼 팬 사인회도 진행했다.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로 구성된 가상 걸그룹 K/DA는 2018년 데뷔해 현실 세계의 걸그룹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속사 역시 가상 세계의 확장성을 감지하고 지갑을 열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등은 지난 5월 제페토 서비스를 하는 네이버제트에 12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9일에는 JYP도 네이버제트에 5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9월 블랙핑크 멤버 4명과 미국 팝 스타 셀레나 고메즈의 아바타가 만든 ‘아이스크림’ 댄스 퍼포먼스 비디오. 유튜브 영상 캡처

에스파는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면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아바타로 명명하긴 했지만 현실 멤버에 종속되지 않는다. 향후 인공지능 학습 등을 통해 독자성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지과학자인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멤버들의 분신이라는 의미에서 아바타로 부르고 있지만, 독립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버추얼 비잉(Virtual Being)이기도 하다”며 “인공지능 학습을 통한 별도의 소셜 미디어 활동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팝의 활동 영역은 확장하고 있지만 성공을 위한 조건은 크게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캐릭터 가 갖는 매력과 실력은 현실과 가상을 가리지 않는 성공의 충분조건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비즈니스의 관점에 따른 성패는 결국 캐릭터가 가진 매력에 따라 좌우되는데, 가상 캐릭터에서 사람과 같은 매력을 느끼긴 쉽지 않다”며 “현실 멤버들 역시 가수이기 때문에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노래”라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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