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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뇌졸중 극복 왼손만으로 치는 피아노… “나는 늘 행복”

감동의 피아니스트 이훈

오는 26일 롯데콘서트홀 유튜브 채널에서 무관중 리사이틀 ‘My Left Hand(나의 왼손)’를 선보이는 피아니스트 이훈. 2012년 뇌졸중으로 오른손 팔·다리가 마비된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특별한 왼손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게 됐다. 권현구 기자

피아니스트 이훈은 왼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페달도 왼발로만 밟는다.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이던 그에게 8년 전 뇌졸중이란 불의의 사고가 찾아와서다. 좌뇌를 들어내는 대수술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고 언어장애까지 앓게 됐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에게 치명적인 장애에도 오히려 전보다 깊어진 선율로 관객의 가슴을 두드리는 중이다. 예술이란 곧 삶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이훈의 연주 안에 깊게 밴 덕분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훈은 “10%도 안 되는 가능성에서 살아난 것만큼 큰 기적은 없다”면서 “늘 행복하다. 그런 마음을 전하고자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말했다.

오는 26일 오전 11시 롯데콘서트홀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는 무관중 리사이틀 ‘My Left Hand(나의 왼손)’는 피아니스트 이훈의 특별함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롯데문화재단과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 지난 4일 공연 녹화 당시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이훈은 무대 중앙에 놓인 피아노까지 천천히 걸어 나온 후 열정적인 연주를 펼쳤다. 지난해 독주회 때 보조자에 의지해 무대에 입장했던 이훈은 “혼자 힘으로 처음 입장한 감격스러운 무대였다”며 “연주도 만족스러웠다. 관객이 이번 공연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스크랴빈의 ‘전주곡과 녹턴 Op.9’, 전욱용의 ‘왼손을 위한 판타지’, 고도프스키의 ‘명상’, 바흐-브람스의 ‘샤콘느 BWV.1004’ 등으로 구성됐다. 작품마다 동양화인 듯 여백의 미가 묻어났다. 화려함으로 치장한 연주에는 없는 이 배려의 공간에서 관객은 음악을 유영한다. 8월 타계한 전설의 ‘왼손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와 견줘 “한없이 작은 수준”이라며 손사래를 친 그이지만, 연습만큼은 누구보다도 치열하다.

이훈은 “양손이면 빨리 익혔을 곡들도 반년이 걸릴 때가 있다. 어려운 곡은 1년이 걸려도 못 친다”며 “아침 먹고 다시 저녁 먹을 때까지 피아노를 친다. 선보인 레퍼토리 모두 극복의 마음으로 만들어온 소중한 곡들”이라고 전했다. 체력관리 겸 재활을 위해 매일 아침 산책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당시 학교 앞 교습소에서 흘러나오던 피아노 소리에 매료된 이훈은 촉망받는 젊은 연주자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스 뮤즈 국제 음악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고 독일·네덜란드를 주로 오가며 공연을 펼쳤다. 하지만 2008년 독일 유학을 끝내고 향한 미국 신시내티 대학에서 그는 박사과정을 밟던 2012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세를 준 할머니가 그날따라 늦게 잠든 덕에 쓰러진 이훈을 빨리 발견할 수 있었고 세계적인 뇌수술 전문의가 일정을 취소하고 그의 수술을 집도했다. 부리나케 달려온 신시내티 음대 교수와 함께 유학하던 동료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그의 생환은 어려웠다. 스승인 전영혜 경희대 명예교수 겸 피아니스트는 눈을 뜬 이훈에게 “오른손을 위한 곡은 없어도 왼손 연주자용 악보는 많다. 하나님이 너를 특별하게 쓰시려고 하는 거다”며 독려했다. 이훈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피아노 치는 일이 소명처럼 느껴지더라”며 “잘 치든 못 치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몸 둘 바 모를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생의 끝에서 피아노로 다시 희망을 찾았다. 4년간의 지난한 재활을 이겨내고 2016년 서울 가톨릭 성모병원에서 연 첫 독주회는 미국에서 7번의 연주회를 가지면 박사 학위를 주겠다는 신시내티 대학의 특별한 제안으로 이어졌다. 성모병원 담당의는 이훈의 이례적인 재활 속도를 연주의 힘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훈은 “무엇보다 성격이 낙관적으로 변했다. 콩쿠르를 앞두고 한숨도 못 자고 불안해하던 이훈은 이제 없다”며 웃어 보였다.

그의 특별함에 매료된 무대의 러브콜도 이어지는 중이다. 포스코1%나눔재단이 최근 청각장애인 기부금 마련을 위해 제작한 영상에서 그룹 다비치 강민경과 협연해 화제를 모은 그는 서울의료원 등 응원이 필요한 곳에서 초청 연주를 이어간다. 또 12월 첫 앨범 ‘My Left Hand’(가제)를 녹음하고 내년 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독주회 영상도 선보인다.

그렇다면 이훈이 아티스트로서 품은 꿈은 무엇일까. 그는 “감사함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기회를 마련해준 롯데문화재단·포스코·서울문화재단부터 연주를 즐겨주는 관객까지 모두에게 감사해요. 한 분에게라도 더 위로를 전해드리는 게 고마움에 대한 보답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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