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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

룻기 1장 1~5절


룻기는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가 어떤 것인지 아주 잘 정의되어 있다. 한글 성경에 인자와 자비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한 단어다.

성경에 쓰인 헤세드는 주로 4가지 의미와 조건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성립된 계약 관계를 전제하고, 따뜻한 감정뿐만 아니라 실천적 의미가 있으며,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베풀되 책임이나 의무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베푸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룻기에 나타난 헤세드는 어떤 것이 있는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룻이 시어머니에게 베푼 사랑이다. 룻은 모압 여인이다. 젊은 나이에 유대인 남편과 자식을 잃었다. 그렇기에 이제 시어머니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는 이방인 유대 땅으로 이주해 와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한다.

큰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났다. 성경은 어디에도 떠난 그녀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시 문화나 사회적 배경으로 봤을 때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룻은 떠나지 않고 굳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사랑과 긍휼을 시어머니에게 베푼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계약에 의해 한번 맺어진 고부 관계를 끝까지 지킨다.

둘째, 밭의 주인 보아스이다. 룻이 그에게 찾아 왔을 때 그는 그녀를 거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받아들이면 많은 재산상 손실을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아스는 그녀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성읍 장로들을 일부러 불러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증거를 삼아, 그녀와 그녀의 시어머니를 가족으로 맞아들인다. 내가 감당할 필요가 없는 책임을 스스로 기꺼이 감당한다. 그것은 인생의 패배자, 삶이 산산이 부서진 자에게 베푸는 다함 없는 은혜이다. 그것이 바로 헤세드이다.

구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모형 혹은 그림자로 나타난다. 만일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냥 도덕적 의미를 강조한 다른 종교 서적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아니, 이 땅에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오히려 노자의 ‘도덕경’을 읽는 것이 훨씬 낫다. 도덕경은 사람이 우주의 근본이며, 진리인 도에 이르려면 자연법칙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적용도 쉽고 우리에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성경이 그들의 경전과 다른 점은, 성경은 모든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가 그 속에 녹아 있다. 말씀 속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성경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룻과 보아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인가. 그렇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굳이 끌어안을 필요 없는 우리 인간들을 책임지기 위해 낯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계약으로 맺어진 당신의 백성들을 자기 목숨을 다하도록 사랑을 베풀고, 성령 하나님으로 보증 세워 우리의 마지막 순간, 그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노라 약속하셨다.

그것이 룻과 보아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헤세드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요 사랑이다. 만일 성경의 모든 부분 속에서 이처럼 그리스도가 인지된다면, 우리 삶이 더 풍족해질 것이며 그리스도의 강권적 사랑이 우리 모두를 감싸 안게 될 것이다.

세상 종교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너를 무조건 사랑해’라고 말을 한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자유케 하신 이야기, 그것이 복음이다. 이것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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