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재건위’ 사건 진실 알린 조지 오글 목사 추모 물결

‘고문 조작’ 폭로 1974년 추방당해 파킨슨병 투병 중 지난 15일 별세

조지 오글 목사가 1974년 12월 14일 정부로부터 강제 출국 명령을 받은 뒤 비행기에 오르면서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이 함께하기를”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고문·조작으로 드러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을 해외에 알렸다는 이유로 1974년 12월 미국으로 추방당한 조지 오글 목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2004년부터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던 오글 목사는 지난 15일 미국 콜로라도 라파예트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이홍정 목사)와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이사장 안재웅 목사)은 24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이제홀에서 추모식을 갖고 오글 목사의 삶과 정신을 회고했다.

정부가 이날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하면서 추모식 참석자는 10명으로 제한됐지만, 오글 목사를 기억하는 원로 목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제홀에 들어가지 못한 참석자들은 건물 내 다른 사무실에서 비대면으로 추모식에 참여했다.

추모식은 기도와 찬양, 추모영상, 추모사 순으로 진행됐다. 안재웅 목사는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오글 목사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하셨다”면서 “인혁당 사건 피해 가족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신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합리적이고 명석하며 사리판단이 정확하셨으며 늘 검소한 삶을 사셨다”며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썼던 오글 목사의 정신을 잇자”고 말했다.

부인 도로시 오글 여사도 지난 20일 유족을 대표해 감사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신승민 NCCK 국장이 대신 읽었다. 오글 여사는 “생전 남편은 한국인의 노동권리와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일한 걸 자랑스러워했다”면서 “한반도의 평화협정과 통일을 바랐던 남편의 뜻을 따라 남은 가족도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192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오글 목사는 54년 미국연합감리회(UMC) 파송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도시산업선교에 힘썼던 그는 74년 11월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목요기도회에 참석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했다. 이 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7시간 동안 심문을 당했다. 오글 목사가 이 사실을 해외에 알리자 박정희정권은 추방을 결정했다. 한 달 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오글 목사는 주먹을 높이 들며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이 함께하길”이라고 외쳤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74년 중앙정보부가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다’면서 민주화운동을 한 언론인 교수 학생들을 검거한 사건이다. 박정희정권은 이듬해 4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후 18시간 만에 8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2007년 사법부의 재심을 통해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정부는 지난 6월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오글 목사에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며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도 27일 서울 종로구 본부 예배실에서 오글 목사 추모식을 한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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