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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멀어져만 간다

천지우 논설위원


“분단이 따로 없다”는 누군가의 탄식을 페이스북에서 봤다. 지난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를 배제하고 징계를 요청한 것을 두고 극명하게 갈라진 페이스북상의 여론을 보면서 나온 탄식이었다. “역사의 심판을 받을 폭거”라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추 장관님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갈라진 것은 확실한데 쪼개진 양쪽은 균등하지 않다. 그 크기는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의 경우는 8대 2 정도다. 내가 맺은 관계망 안에서의 여론 지형이 이렇다는 것이지, 실제 여론이 이와 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페이스북을 실제로 알고 지내는 이들의 일상사를 구경하는 용도로만 쓰다가, 언젠가부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우연히 본 글이 좋으면, 어떤 통찰이 마음에 들면 거리낌없이 팔로우하거나 친구 신청을 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들뜬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면부지 친구들의 속 시원한 일갈, 날카로운 일침을 보는 게 신나고 흥미진진했다.

그러다 균열이 생긴 것은 지난해 조국 사태 때다. 당시 국론이 분열됐던 것처럼 페이스북 친구들도 쫙 갈라졌다. 처음에는 균형 잡힌 사고를 하기 위해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도 꾹 참고 봤다. 하지만 계속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글을 보면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내 정신건강을 해칠 지경이 되면 그 사람의 글이 다시는 눈앞에 안 보이도록 관계를 끊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타임라인에 8대 2라는 편향된 구도가 형성되고 말았다. 정신건강은 더 이상 해치지 않지만 현실 인식엔 왜곡을 가져오는 구도다. 어떤 정치적 이슈가 내 타임라인 안에선 압도적인 비율로 비난받지만, 실제 여론은 찬반이 팽팽하거나 역전되기도 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안에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가, 밖으로 나와 딴판인 상황을 접하게 되면 앞서 가졌던 확신이 흔들리며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답답하고 분한 마음도 생긴다. 자신의 관점을 강화하는 정보만 취하는 ‘확증 편향’의 폐해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데이터 분석가 크리스 샤퍼는 “소셜미디어가 증폭시키는 확증 편향을 내버려 둔다면 사회는 점점 파편화될 것이고,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합의점을 찾는 일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측면을 고발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선 암울한 진단과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지난 선거에서 뽑은 사람 때문에 친구와 절교한 이 나라 국민들은 이제 서로 대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말하는 채널만 보면서 고립돼 있죠.”(미 공화당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모두에게 각자의 진실을 가질 권리가 있다면 서로 소통하고 타협할 필요가 없겠죠. 우리에겐 같이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이 필요합니다. 이게 없으면 나라도 아니에요.”(벤처 투자가 로저 맥너미) “단기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건 내전입니다.”(전 페이스북 임원 팀 켄덜) “지금 상태로 20년쯤 지나면 기후변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세계의 민주화도 퇴보하며 이상한 독재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컴퓨터 과학자 재런 러니어)

소통 없음, 내전, 이상한 독재 모두 남 일이 아니다. 한국의 상황도 미국 못지않게 위험해 보인다.

소셜미디어의 다른 문제도 있다. 소설가 장강명은 짧고 강하게 조롱을 잘하는 이들이 여론을 이끌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대중의 기분’이 지배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파워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사람)인 논객 진중권은 다른 매체에는 길고 진지한 글을 쓰지만 페이스북엔 권력의 위선을 짧고 강하게 조롱하는 글을 주로 올린다. 확실히 소셜미디어에선 신랄한 조롱과 야유가 잘 먹힌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분만으로 판단해버리는 경향도 문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골치 아픈 생각은 인플루언서에게 외주를 맡긴 채 자신의 기분이 좋고 나쁜지만 따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 사이의 숙의가 없이 대중의 기분이 사회를 지배한다면 그 사회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조롱은 재미있고 숙의는 노잼이다. 이것 참 딜레마다.

천지우 논설위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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