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월세 족쇄에 미래 암울… 독립생활 포기도”

[월세시대, 기로에 놓인 한국] 갓 취업한 10학번 3인의 절규


A씨(29·여)가 독립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상경한 후 지금까지는 사촌 언니와 함께 살아왔다. 현재는 지난해 이사한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5만원인 방 두 칸짜리 빌라가 두 사람의 보금자리다. 직장에 다니는 사촌 언니가 보증금과 월세를 다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A씨에게 둘도 없는 은인인 언니도 이제는 혼자 살고 싶어졌나 보다. A씨는 “요즘은 사촌 언니가 취업하면 얼른 독립하라고 보챈다”고 전했다.

이 말을 더이상 흘려들을 수 없게 된 사정이 독립을 고민하게 된 이유다. A씨는 지난 9월 염원하던 IT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 연봉 수준은 3000만원 초반대.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초임 연봉치고는 나쁘지 않다. A씨는 “독립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취업 전에 코딩 학원 등을 다니며 빌린 돈부터 갚고 보증금을 모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독립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A씨의 현실적인 판단이다. A씨는 “서울 시내 부동산 전세 보증금 시세가 치솟는 것을 보면 언제쯤이나 돈을 모을 수 있을지 엄두가 안 난다”고 한숨지었다. 월세를 얻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지금 버는 거로 서울에서 월세 내고 사는 건 너무 어렵다. 그나마 저렴한 작은 원룸도 40만~50만원이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월세는 절대 싫다”고 강조했다.


A씨와 대학 동창인 B씨(30)도 월세라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한다. 월세를 벗어날 수가 없는 현실이 화를 돋운 탓이다. B씨는 대학 입학 때부터 혼자 살아왔다. 2013년부터는 지금 사는 원룸을 보금자리로 삼았다. B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 50만원을 내왔는데 집주인이 오래 살았다고 지금은 42만원만 받는다”고 운을 뗐다.

벌이만 보면 A씨보다 나은 편인데도 ‘월세 탈출’이 쉽사리 눈앞에 그려지지 않는다고 한다. B씨는 최근 대형 병원 연구지원부서에 합격했다. 4000만원 중반대 연봉을 받기로 계약했다. 덕분에 월세 부담은 좀 줄었지만 전세는커녕 좀 더 큰 월세방을 찾는 것도 여전히 부담스럽다. B씨는 “방이 작아서 좀 더 넓은 집을 알아봤는데 월 70만~80만원이나 하더라”고 전했다. 정부의 월세 지원을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지원 대상 소득 기준이 너무 낮아서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B씨는 “지금 집에서 돈을 어떻게든 더 모아 언젠가는 전세로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집세 부담에 아예 독립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대학 동창 C씨(29)도 A씨나 B씨처럼 최근 취업 전선에 발을 디뎠다. 주류회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C씨는 “세금 떼고 월 170만원 정도 받는 거 같다”며 “일이 재미있다 보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만족스러운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 입학 이후 살아왔던 원룸은 포기해야 했다. C씨는 “학교 다닐 때는 혼자 원룸에 살았는데 그때만 해도 부모님이 월세를 대신 내주다 보니 체감을 못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 월급으로 월세 50만원을 내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돈을 모아야 하는데 월세로 빠져나간다는 생각을 하니 혼자 사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C씨는 다시 부모님과 살기 시작했다.

치솟은 집값과 임대차 3법 이후 덩달아 뛰어오른 전셋값을 받아들이는 2030 사회초년병들의 시각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도 공통점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사는 것에 대한 반감이 묻어났다. 전세라는 목표가 흐릿해진 점이 반감을 키웠다. 돈을 모아 올라갈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꿈꿨는데 정부가 걷어찬 거 아니냐는 불만이 배어 있다. B씨는 2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세대가 월세를 벗어나기 힘든 구조라 불만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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