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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트럼프의 ‘초토화 전술’

배병우 논설위원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 연합군은 1812년 9월 14일 모스크바로 들어갔다. 도시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그날 밤 퇴각하는 러시아군의 방화로 전체 건물의 70%가 곧 잿더미가 됐다. 사투 끝에 수도에만 입성하면 전쟁이 끝날 것으로 믿었던 프랑스군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러시아군 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은 적을 굶게 하려고 전원 지대도 모두 불태웠다. 프랑스군은 혹한과 굶주림에 궤멸했다. 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의 침략 때 사용한 작전은 초토화 전술(scorched-earth tactics)의 고전적인 예다. 전쟁에서 적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술이다. 퇴임이 두 달도 남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와 유사한 전술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서 트럼프가 상정하는 ‘적’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다.

지난 27일 이란 핵 개발을 이끌어온 핵 과학자 모센 파흐리자데가 암살됐다. 암살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예스(yes) 사인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바버라 슬래빈 국장은 “이번 암살은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의 외교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합작품임을 시사했다. 이란의 보복을 유도해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 핵협정에 바이든 행정부가 복귀하는 걸 매우 어렵게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외교·안보 정책 기반은 모조리 파괴하고 떠나겠다는 속셈이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한 것을 알면서도 “선거 사기로 대통령직을 도둑맞았다”고 반복하는 것이 초토화 전술의 대표적 예라는 지적이다. 내년 1월 20일이면 물러나야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당연히 누려야 할 정치적 정당성을 최대한 흠집 내고 떠나려 한다는 것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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