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조용근의 세금이야기

[조용근의 세금이야기] 정치인들 혈세를 쌈짓돈 쓰듯… 세금이 당신 돈이요?

줄줄 새는 세금 기막혀


세금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필자의 마음 판에 늘 새겨두고 있는 문구 하나가 있다. 바로 ‘세금은 혈세’다. 그래서인지 주위에서 세금을 마치 자기 쌈짓돈처럼 쓰는 사람이나 단체를 보면 “아! 이것은 아닌데…”라며 화가 날 때가 많다.

그러잖아도 납세자 대부분은 세금을 내라고 하면 마치 자기 돈을 나라에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안 내려고 하거나 적게 내려고 몸부림치곤 한다. 또 세금을 낼 때는 몇 번씩이나 화가 치민다고들 한다. 세금을 적게 내려고 별의별 생각을 하고 묘안을 짜내는 납세자들로부터 갖은 수모와 욕을 먹어가며 어렵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징세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어렵게 거둔 세금은 행정부의 적절한 예산 편성과 국회의 까다로운 승인 절차 등을 거쳐 꼭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한다. 하지만 일부 온당치 못한 정치 논리가 개입돼 실제로는 그 취지와 전혀 다르게 쌈짓돈처럼 쓰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를 보며 자기가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인다고 느끼게 되면 어느 누가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낼 수 있을 것인가.

필자가 국세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직접 겪었던 일이다. 24년 전인 1996년 여름, 어떤 시골 산간 지역에 초임 세무서장으로 발령받아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세무서는 전국에서 세수 규모가 작은 곳 중 하나였다. 일제 강점기 때인 34년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오래된 세무서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된 세원이 농산물이었다. 때문에 평야가 있어 곡물 수확이 많은 농촌 지역일수록 세수가 많았고, 당연히 세무관서 비중이 큰 것으로 여겨졌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 세무서는 군청보다 훨씬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았으며 정원도 비교적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무서 아래쪽에 위치한 군청의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은 물론 근무시간 중에도 시간만 나면 세무서 앞마당 정원에 와서 노닥거리거나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특히 봄가을 날씨를 즐기거나, 더운 여름날 나무 그늘이 필요할 때 세무서 정원을 찾는 군청 공무원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어느 날 필자는 참다못해 그들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보세요, 직원 여러분! 공무원으로 그렇게 할 일이 없습니까? 근무시간에 이렇게 한가롭게 놀고 있다니…. 이런 모습을 군민들이 보면 뭐라 할까요? 어서 가서 일들이나 하세요.” 그랬더니 그들 중 몇몇이 “서장님! 사무실에 가도 별로 할 일이 없어요”라고 했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자세히 물어보았더니 그 군청은 20개나 되는 과(課)로 구성돼 있었다. 관내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까지 포함하면 군청 공무원은 무려 1000여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관내 거주 군민은 8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군민 대부분은 농민이어서 이들을 위해 군청과 면사무소 공직자들이 별로 해줄 일도 없을뿐더러, 설사 있다 하더라도 20개나 되는 과의 업무가 서로 중첩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했다. 계속해서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10년 전인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이 지역 인구가 당시보다 3배 정도 많은 20여만명이었다. 하지만 인구수가 대폭 줄어들었어도 군청 공무원 숫자는 10년 전과 비교해 전혀 변동이 없다고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민선 군수가 되고 나서부터는 선거를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직원 1명도 마음대로 감축시킬 수 없다고까지 했다.

해가 갈수록 거주자는 줄어드는데 그 지역을 담당하는 행정관청의 근무자 수는 그대로이니 바로 이것이 나라 세금이 줄줄 새고 있는 현장의 한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국민 혈세인 소중한 세금이 질질 새는 현장이 비단 이뿐일까. 비슷한 사례는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모두 알듯이 매년 연말 이맘때가 되면 대도시, 시골 할 것 없이 주위 곳곳에서 도로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멀쩡한 도로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을 새롭게 바꾸느라 곳곳에서 교통체증 현상까지 일어난다. 왜 하필이면 연말 때만 되면 이 난리들일까. 연초에 계획했던 관련 예산을 연말까지 쓰지 않으면 반납해야 한다. 예산을 반납하면 다음 연도에는 아예 그 예산을 확보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무리를 해서라도 예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부처라고 예외일까. 부처마다 업무 실적을 더 높이기 위해 제대로 검증도 없이 갖가지 신규 사업을 계획해 이에 따르는 예산을 확보하려고 기를 쓰기 마련이다. 여기에 선거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이 선심성 쪽지예산 편성으로 세금을 마치 자기 쌈짓돈인 양 써댄다. 그런 이들을 향해 “만약 당신 돈이라면 그렇게 쓸 수 있을까요? 주인 없는 돈이라고 함부로 써도 되나요?”라고 되묻고 싶다. 물론 국민을 위한 복지·환경·안전이나 굳건한 국방 분야 등의 꼭 필요한 사업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전 분석을 거쳐 예산을 잘 편성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올바른 예산 집행과 관련한 제도개선 방안 한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말 어렵게 거둬들인 혈세가 어떻게 잘 쓰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납세자들로 구성된 시민단체를 만들어 철저하게 예산지출을 감시하도록 해보자. 그 감사 결과를 다음 연도 예산계획 수립 때 반영하도록 제도화하면 어떨까 한다. 강력한 시민감시단체는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구성해 각종 사업과 예산 집행 항목에 대해 철저히 원가 계산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특별 입법을 통해 각종 정치 논리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구로 만들어 운영해 보자는 것이다.

다시 한번 외치고 싶다. “세금, 분명히 당신들 쌈짓돈 아니지요?”

조용근 사외 논설위원·전 한국세무사회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