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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속 세상] 일제 강점기·한국전쟁 상흔 품은 채… 시간이 멈춘 마을

부산 매축지 마을

어둠이 깔리면 매축지마을과 인근 아파트 단지의 풍경은 더욱 이질적인 것이 된다. 주변은 온통 아파트로 재개발돼 이 마을만 고립된 섬처럼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한 도심 뒤편에 ‘시간이 멈춘 마을’이 있다. 부산역 주변 수많은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매축지(埋築地)마을은 흘깃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다. 매축지는 이름 그대로 ‘바다를 메까 맹근 땅’이다. 1970년대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부산항 인근 갯벌을 메워 조성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시모노세키와 부산항을 직항으로 연결하고 일본인이 많이 이주해 오면서 매축사업이 시작됐다. 매축한 땅에 각종 군수물자를 쌓아 놓기 위해 막사와 마구간을 여럿 지었다고 한다.

좁은 지역에 많은 주민이 살다 보니 집집마다 화장실을 지을 수 없어 공용화장실을 사용한다.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현재 모습은 6·25전쟁이 터지면서 생겨났다. 유일한 피난처였던 부산에 물밀 듯 내려온 피난민들이 마구간을 개조해 거주하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한두 평에 불과한 쪽방들로 마을이 형성됐다. 부엌에 방 하나 딸린 집이 대부분이고 화장실은 골목 중간쯤의 공용화장실을 이용한다. 골목은 한 집이 문을 열면 맞은편 집 문에 닿을 정도로 좁다. 이런 좁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매축지마을에서 큰길로 나가는 통로인 자성로는 1941년부터 1972년까지 옛 문현선 열차가 오가던 부산의 도심 철길이었다. 2017년 주민 편의를 위해 이 터널이 만들어졌다.
마을 입구 벽면에 ‘뚝딱뚝딱 판잣집’이라는 문구와 마을의 역사적 자료들이 게시돼 시선을 끈다.

매축지마을은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친구’ ‘아저씨’ ‘마더’ ‘하류인생’ 등 많은 영화의 촬영지가 됐다. 최근 매축지마을의 재개발이 확정됐다. 시간이 흐르면 좁디좁은 골목의 풍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마을에서 40여년을 살아온 심부석(70)씨는 “마을은 아직 변한 것이 없는데 재개발이 되면 어떻게 될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마을에 불이 날 경우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봇대에 설치된 종이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매축지마을은 세 차례 큰 화재가 발생했다. 1953년에는 큰불이 마을을 뒤덮어 37명이 죽고 140명이 다쳤으며 대다수 집이 소실됐다. 이후 다시 집을 지으면서 생긴 골목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사진·글=최종학 선임기자 choij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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