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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높은 산, 기쁜 강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뭘까―요?” 상품 바코드를 하나씩 스캔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님이 묻는다. 마스크 너머로 장난스러운 눈빛이 반짝인다.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아니 아니 그럴 리 없지, 원래 개구진 농담을 즐기는 손님이다, 난센스 퀴즈일 거야. 고개를 갸웃했더니 손님이 이내 답을 말한다. “부, 동, 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다. 시국을 반영한 농담이라 함께 씁쓸하게 웃었다.

가는 곳마다 ‘집’ 이야기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파트’다. 어떤 친구는 작년 이맘때 수도권 신도시로 이사했는데 그때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놓았더라면 지금쯤 1억원은 올랐을 거라며 아쉬움에 혀를 찬다. 다른 친구는 서울 어디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데 그게 세상에 십 년 새 시세가 두 배나 올랐다나. 역시 아내 말 듣길 잘했다며 허허허 웃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일할 맛이 사라진다. 1년에 1억원, 십 년에 두 배라니, 저리 쉽게 벌 수 있는데 이리 고생하면 뭣하나, 편의점 계산대에서 핸드스캐너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쭈욱 빠진다.

담배 한 갑 팔아 남는 이익은 400원, 거기에 카드수수료 떼고, 프랜차이즈 본사랑 배분율 떼고, 그럼 300원이나 남으려나? 그걸 하루종일 팔고 또 판다. 그리 벌어 임대료 내고, 직원들 월급 주고, 4대 보험료 내고, 전기요금 내고, 성실히 세금 내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물고기를 싣고 항구로 돌아가는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같은 심정으로 앙상한 금액을 아내에게 송금한 날에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여보 미안해, 이번 달엔 이 정도네.” 편의점 창고에 쭈그리고 앉아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을 뜯어 삼키다 울컥 뜨거운 무엇이 목을 타고 올라온다. 내가 모자란 걸까, 세상이 잘못된 걸까.

어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지만 툴툴 털고 다시 계산대 앞에 선다. 근무자에게 전달사항 알려주고, 테이블 청결 상태 확인하고, 호빵기에 호빵 집어넣고, 냉장고 안에 들어가 음료수 채우고 있으려니 물류센터 차량이 도착한다. 덜컹덜컹 박스를 내려놓고 다음 편의점으로 향하는 배송기사 아저씨의 우렁찬 인사가 매장 안에 울린다. “오늘도 많이 파세요!” 그래, 힘내자, 힘! 후다닥 트럭으로 달려가 똑똑 창문을 두드린다. 웬일인가 눈을 크게 뜬 배송기사 아저씨에게 뜨끈한 홍삼 드링크 하나를 건네면서 씩씩하게 배웅한다. “오늘도 안전운전하세요!”

누군들 가만히 앉아 수억원 벌고 싶지 않겠나. 구시렁구시렁 욕하면서도, 솔직히 부럽다. 그것이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도 그것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며, 나는 내가 사는 세상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나아가리라는 소박한 다짐으로 오늘도 편의점에서 손님을 맞는다.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민우 아빠. 당신 좋아하는 갈비찜 해놨어. 오늘 빨리 들어오고, 맥주도 좀 가져와!” 그래, 이런 ‘셔틀’하는 맛에 사는 거지. 집에 가면 아내에게 퀴즈를 내야겠다. “여보, 세상에서 제일 기쁜(깊은) 강이 뭔지 알아?” 답은 우리 가족 건‘강’.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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