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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반려시대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간혹 우리말과 외국어에 제법 비슷한 표현이 있어서 신기할 때가 있다. 예컨대 우리는 손재주가 뛰어나면 ‘금손’이라고 하는데, 영어에서는 화초를 잘 돌보는 사람들을 가리켜 ‘녹색 손가락(green fingers)’이라는 표현을 쓴다. 반대말로 화초를 잘 죽이는 사람은 ‘검은 엄지손가락(black thumb)’이라고 한다. 우리가 ‘곰손’이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키우기 쉽다는 선인장에 물을 너무 자주 줘서 초록동산으로 보낸 후(반려동물이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고, 반려식물은 ‘초록동산으로 갔다’고 한다) 스스로를 ‘검은 엄지손가락’이라 진단하고 섣불리 화분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꽃집에서 생기를 뿜어내는 화분들을 볼 때는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곤 한다.

코로나19 초기 ‘포스트 코로나’에 대해 쏟아지던 사회·경제·정치적 예측 중에 흥미롭게 읽은 건 사람들끼리 대면 접촉을 피하게 되면서 반려동물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글이었다. 코로나가 아니라도 충분히 수상한 시절, 반려동물 외에도 애정을 쏟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공기정화용 식물의 인기는 미세먼지 때문에 진작부터 높았지만, ‘보면서 즐기기 위해 심고 가꾸는’ 관상(觀賞)식물이라 불리던 나무와 풀도 반려식물로서 위상이 굳건해졌다. 올해 3분기 홈 가드닝 관련 상품 매출이 지난해보다 70% 넘게 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쿼런틴 가드닝(quarantine gardening)’이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격리’와 ‘식물 가꾸기’를 뜻하는 두 단어가 합쳐진 말로, 검색하면 유명인들이 식물을 키우는 사진이 줄줄이 올라온다. 작고 푸릇푸릇한 새싹이 매일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확인하는 게 마음의 평화와 희망을 선물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는 또 하나의 ‘반려’를 발견했다. 책 ‘아무튼, 반려병’에서다. 처음에는 단박에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다. 병이 반려라니. 16년 차 직장인이라는 저자의 병치레 목록에는 허리디스크, 류머티즘성관절염, 과민성대장증후군, 치열 등이 포함돼 있는데, ‘지긋지긋하지만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된’이라는 표현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고 보니 의사들이 쉽사리 완치되지 않는 병을 설명하면서 ‘평생 살살 달래가면서 사이좋게 친구처럼 지내라’고 충고하지 않던가. 저자는 질병으로부터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아픔은 결코 내가 예상하는 타이밍에 오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인생이 내 뜻대로만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엄중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내 경우에는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골골거리는 것으로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

반려의 이름이 붙은 대상들을 꼽아봤다.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인형, 반려로봇, 반려병까지. 그런데 지난해 보호시설에 들어간 반려동물이 13만5000마리가 넘었다고 한다. 1시간에 15마리가 버려진 셈인데, 구조된 숫자가 이만큼이면 유기된 동물은 더 많을 것이다. 다른 통계를 보니 키우던 개가 죽을 때까지 함께했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식물도 상추나 허브, 콩나물을 잘 자라게 해서 먹을 요량으로 키운다면 반려라고 부르기엔 걸맞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끝까지 곁에 남는 것은 개나 고양이도, 식물도, 인형도,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로봇도 아닌 ‘반려병’인 건가.

생각이 엉뚱한 데로 뻗어갔지만 ‘아무튼, 반려병’의 작가는 무겁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아픈 몸과 팀워크를 이루는 것이 병을 대처하는 기본자세임을 몇 년간의 골골이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 이후로 어딘가 아프면 주문을 외워본다. 고생이 많아, 잘하고 있어, 고마워.’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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