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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미술] 세종대로 입간판에 가린 추상조각… 이우환 작품이였어?

(24) 프레스센터앞 ‘관계항’ 연작

서울 시청 인근 한국프레스센터 앞에 설치된 이우환 작가의 조각 ‘관계항’. 성격이 다른 돌과 철을 대비시킴으로써 각각의 물성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이우환 작가는 생존 작가 중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싸다. 이 조각 역시 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래 사진에서처럼 주변에 대형 간판이 설치돼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윤성호 기자

“어머, 여기 이런 작품이 있는 줄 몰랐어요.”

얼마 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 앞을 지날 때였다. 두 개의 석조 간판 뒤 조형물을 가리키며 저 작품에 관한 기사를 쓸 거라고 했더니 함께 걷던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자주 그 앞을 오가고, 프레스센터 식당을 이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었는데도 그 존재를 몰랐다는 얘기다.

작품은 직삼각형 형태 철판 4개를 중심을 향해 맞대고, 그것이 밖으로 뻗으며 만들어내는 영역만큼 바닥에 원형 철판을 깔았다. 그러곤 철판과 철판 사이 4개 공간에 각각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추상 조각이다. 작품은 꽤 큰 4m 높이 대작이다. 하지만 주차장 들어가는 길목 옆에 있고, 육중한 간판석이 시선을 방해하다 보니 작품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작품은 1985년 11월 프레스센터가 들어서면서 설치된 화가이자 조각가인 이우환(84·사진)씨의 대표작인 ‘관계항(Relatum)’ 연작이다. 이우환이라는 이름을 아는 대중은 많지 않을 테다. 하지만 ‘그 왜, 이우환 위작 사건 있잖아’ 혹은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열광적 팬이라며 휘몰아치는 바람 같은 작품 앞에서 인증 사진 찍었던 그 작가 몰라?’ 하면, 그제야 ‘아, 그 작가였어’라며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겠다.

88올림픽 앞두고 대형 신축 건물에 미술품 권장

2016년 미술시장을 달궜던 이우환 작품 위작 사건은 역설적으로 그의 인기를 방증한다. 현재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등 3명은 생존 작가로 작품값이 10억원이 넘는 이른바 ‘10억원 클럽’에 속한다. 이우환은 가장 먼저 그 고지에 올랐다. 이들을 일컫는 단색화(70년대 태동한 단색 계열의 추상화)는 90년대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호출되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그런 유명 작가의 대표작을 일부러 미술관을 찾지 않더라도 거리에서 볼 기회가 프레스센터 앞인 것이다. 문제는 복잡한 주변 환경 탓에 작품 자체가 존재감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은 이 작품을 탄생시킨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작품의 탄생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시가 건축심의 조례를 강화해 83년부터 미관지구 내 11층 이상, 건축면적 1만㎡ 이상 신축 건물에 조각과 벽화 등 미술품 설치를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때 서울 곳곳에 마천루가 올라갔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10층 이상만 50여 채가 공사 중이었다. 럭키금성 빌딩(현 LG빌딩), 대한생명 빌딩(현 63빌딩), 국제그룹 빌딩, 상공회의소 빌딩, 서울신문·프레스센터 빌딩 등이 이 무렵 완공됐다. 이에 따라 여의도 63빌딩이 미국의 리처드 리폴드, 외환은행 본점 김형근, 잠실교통회관 변종하, 삼성 본관 이종상 작가 등 주요 건물마다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들어섰다. 언론은 ‘도시민의 정서 해갈…환경 미술품’, ‘서울이 멋을 낸다’ 등의 기획 기사로 이 제도에 따른 서울의 미적 변화를 다뤘다.

프레스센터에는 이우환의 작품과 함께 김영중 조각가의 부조가 설치됐다. 두 작품 합쳐 1억5000만원이라고 보도됐으니 당시로서 거액이 지급됐다. 건물 신축 과정에서 당시 설치 작업을 주도했던 서울신문 고 서기원 전 사장은 “이우환이라는 작가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창조성에 주목해 작품을 의뢰하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노마드 작가, 유럽에서 먼저 알려져

그러나 이우환이 유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한국에서 덜 알려졌을 뿐 이미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며 해외에 먼저 이름을 알린 작가이기 때문이다. 재일작가인 그는 77년 독일 카셀도쿠멘타에 초대됐고, 독일 뒤셀도르프시립미술관(78), 미국 루이지애나현대미술관(88)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부산의 공간화랑 신옥진(73) 대표는 82년경 당시 40대 중반이던 이우환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그때도 벌써 세계적인 작가였다. 신문에 주 1회 해외토픽이 났는데, 거기에 전시 소식이 가끔 소개됐다. 그걸 보며 ‘와,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우환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69년 일본 미술잡지 ‘미술수첩’에 평론이 당선되며 평론가로 먼저 활동했다. 이 무렵부터 모노하(物波)로 불리는 일본의 전위 미술가그룹과 만나 이들과 교유하며 이론을 주도하고 스스로 실천했다. 모노하는 서구의 물질문명에 반기를 들며 자연적 산물을 그대로 작품에 사용한다. 68년 세키네 노부오가 3m 깊이의 원통형 구멍을 파고, 땅에서 파낸 흙으로 전시한 ‘위상-대지’가 그 출발점으로 꼽힌다. 이 작품이 갖는 동양적 의미에 처음 주목한 이가 이우환이다. 자연에서 찾아낸 돌과 산업의 부산물인 철을 대비시키는 ‘관계항’ 연작도 그런 모노하의 기치 아래에서 태어났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발라베에 따르면 관계항은 가공하지 않은 서로 다른 물질을 있는 그대로 대립시킴으로써 그 차이를 통해 물질의 고유한 특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돌과 철은 그렇게 만나서 서로의 존재감을 빛내주고 있다.

대표적인 회화 연작인 ‘선으로부터’(1974, 캔버스에 석채, 194×25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우환은 73년부터는 조각 작업과 함께 회화로 영역을 확장해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을 탄생시켰다. “점하나 찍고 선하나 그어 수억의 돈을 버는 화가”가 된 것이다. 그렇게 가격이 비싼 것은 점과 선이라는 회화의 수단을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거꾸로 회화란 무엇이냐며 회화사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우환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처럼 동양과 서양을 떠도는 세계인이다. 백남준보다 유명세가 덜한 것은 깐깐한 성격에도 기인한다. 또 회화가 비디오처럼 화려하지 않은 측면도 작용한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도 미술계의 노벨상인 세계문화상을 백남준은 받지 못했는데, 이우환은 받지 않았느냐”며 높이 사는 미술계 인사도 있다. 이 상은 1887년에 설립된 일본미술협회가 주관하며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무대&영상 등 5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세계 예술가들에게 수여된다. 이우환은 2001년 한국인 최초로 회화 부문에서 받았다. 이에 따라 이 상을 받은 윌럼 데 쿠닝, 로버트 라우센버그,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수상 이후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2011), 프랑스 베르사유궁전(2014)과 퐁피두메츠센터(2019), 뉴욕 디아비콘(2019) 등 세계 굴지의 미술관 개인전에 초대됐다. 작품값도 계속 뛰고 있다. 프레스센터 앞 ‘관계항’에 대해 신 대표는 “30억∼40억원 정도 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공공미술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렇게 세계적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프레스센터 앞 이우환의 작품이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덕분에 거장의 작품은 거리로 나왔지만, 관리 규정이 없는 제도의 한계 탓에 미술관에서처럼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은 자신만의 아우라가 있다. 전시됐을 때 그 아우라를 충분히 느낄 자신만의 여백이 필요하다. 미술관에서 큰 벽에 때로 한 점만 거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우환의 조각 ‘관계항’은 공공미술품이 어떻게 전시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 주변으로는 프레스센터에 입주한 여러 기관과 회사의 대형 간판석이 어지럽게 설치돼 시선을 방해한다. 지난해에는 바로 옆에 거대한 펜 모양의 언론자유를 주장하는 조형물까지 세워졌다. 나란히 세웠을 때 두 조형물이 서로 어울리는 조합인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이 정도면 작가에 대해 망신주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우환은 7∼8년 전 일본 도쿄의 번화가 긴자의 한 건축주로부터 거액의 작품 설치 의뢰를 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위가 복잡해서 작품이 숨 쉴 구멍이 없다”는 게 거절 이유였다고 한다. 프레스센터 앞 이 작품은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가.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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