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세상만사] 고교 졸업 앞둔 수십년 전 내게

전재우 사회2부 부장


‘꼬옥’ 안아주고 싶었어. 사회를 향한 출발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는데, 이젠 혼자 가야 하는데.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안아주고 토닥거리면 아이 취급하는 것으로 느껴질까 싶어 안아주지 않았더니 너무 어색해졌나 봐. 아주 잠깐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몸도 마음도 생각도 훌쩍 커버렸다고 새삼 느끼게 되니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용기 내 힘껏 껴안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을 느끼겠지만 이제 겨우 낮은 언덕 하나를 올랐을 뿐이야. 다만 처음 경험해본 경사라 힘들었을 게다. 격려하기 위해 수고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아. 언덕이 계속 나오거든. 끝도 모를 깊은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훨씬 더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할지도 몰라.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어. 올라갈 힘은 또 생기니까.

지금 오른 이 낮은 언덕 위에는 여러 갈래 길이 나와. 오롯이 혼자 걸어가야 할 길이야. 누군가 대신 걸어줄 수 없다는 뜻이란 건 알겠지? 누군가의 기대 때문에 갈 길을 억지로 고르진 말았으면 좋겠어. 즐겁고 행복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택해. 어느 길이든 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다른 길로 갈 수 있어. 샛길도 있고, 뒤돌아 가 다른 길로 가도 돼. 얼마 전 어떤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가 자신을 정의하는 말로 ‘한심하지 않은’을 택해 이유가 궁금했는데, 가수를 한다는 이유로 부모가 자신을 한심하게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라.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결승선은 없어. 힘들면 쉬어도 돼. 평탄한 길을 간 듯한 친구의 모습에 좌절할 필요도 없어. 순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언덕은 나오거든.

언덕을 오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겠지만 앞으론 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야. 나와 너무 달라서 피했으면 좋겠다는 사람과 같은 길을 걷기도 해. 이유 없이 욕을 하기도 하고,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하지. 걸맞지 않은 옷을 입었는데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는 착각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작은 가방을 들곤 꾸역꾸역 더 집어넣으려 하는 사람도 보여. 틀린 게 분명한데 맞다 우기는 사람, 원칙을 지켜야 한다면서 자신은 어기는 사람, 패거리 짓고 잘난 체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뉴스에서나 봄 직한 사람들을 직접 겪게 된다니까. 답답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줄 몰라.

그렇더라도 사람들을 미리 판단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름도 인정하고.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장점 없는 사람은 없거든. 맘에 안 드는 사람에게서도 좋은 면을 발견할 수 있어.

그러려면 공감할 줄 알아야 해. 말은 더디게 하고 끝까지 많이 들어봐. 단순히 맞장구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이 돼보고, 그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을 느끼도록 노력해 봐. 싫은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이 보일 거야. 참으라는 말은 아니야. 듣지 않는 데서 욕도 좀, 아니 많이 해도 돼.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이 너무 상하겠다 싶으면 관계를 끊어도 상관없어.

정말 중요한 건 배려야.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 부부가 된 소와 사자 이야기 기억하지? 소는 최선을 다해 사자에게 풀을 줬고, 사자는 최선을 다해 소에게 고기를 줬다는 이야기. 참다못해 서로 헤어지면서 각자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잖아. 넉넉하고 세심한 행동과 마음 씀씀이는 결국 내게 돌아오더라고.

갈 길이 많이 남았어. 종착지에 다다르려면 50, 60년은 걸릴걸. 천천히 여유롭게 가렴. 아직 삶을 잘 모르면서 주제넘었네. 같이 노력해보자. 행복했으면 좋겠다.

전재우 사회2부 부장 jwje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