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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여당도 맹종에서 벗어나야

손병호 논설위원


지금 여당의 모습을 보노라면, 감옥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오직 가둔 자의 눈치만 살피며 조용히 순종적인 삶을 살아가는 수인처럼 보인다. 자기 의견을 내세울 수 없는 구조이거나 내세워봤자 소용이 없어 자기검열을 하고, 결국 자신을 길들이는 극성 세력이 바라는 것만 할 줄 아는 상태 말이다. 180명 가까이 모인 당이면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기 마련인데, 마치 180개의 쌍둥이 로봇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는 말과 행동이 거의 비슷해 기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부동산 대란이든, 법무부-검찰의 충돌이든, 외교안보 사안이든 그 어떤 이슈가 터져도 신기하게도 너무나 일사불란하게 같은 스탠스를 취한다. 다수 국민의 생각과는 한참 괴리된 스탠스인데도 말이다.

그런 정치는 온전한 정치라기보다는, 길들여지는 동안 몸에 익은 행동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의식된 정치 행위가 아니라 눈앞에 돌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눈을 감아버리는 자동반사적 움직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나마 그런 움직임마저 일부 앞줄에 선 완장 찬 이들이 주도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선동자들이 제시하는 방향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무조건 동조하거나, 마음에 안 들어도 감히 참견하거나 반대하지 못한 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 같다. 그 지켜보는 상태가 굳어져 이제는 극성 세력이 원하는 것 이외 다른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 같다. 맨 앞줄의 새가 날아오르면 영문도 모른 채 같이 날아오르고, 또 강물 위에 앉으면 같이 앉는 것처럼.

여당 의원들이 그런 식으로 길들여진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극성 세력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극성 세력이 똘똘 뭉치고, 적극적으로 투표해준 덕분에 총선에서 당선됐다고 지금도 감읍 중일 게다. 그러니 그 세력의 의중에 장단을 맞추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가는 채찍을 맞는다는 학습효과도 쥐죽은 듯이 있는 이유리라. 얼마 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본보기였다. 삐딱했다가는 당 안에 있을 때만 아니라 금 전 의원처럼 밖에 나가서도 두들겨 맞는다는 걸 똑똑히 지켜봤을 것이다. 중요한 선거들을 앞두고 있어 그나마 다른 목소리를 낼 만한 중진 의원들마저 극성 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절이기도 하다. 몇 개월 뒤 또 도움을 받아야 할 텐데, 어찌 감히 그들에게 대들겠는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그래도 예전에는 이 당에 초선 그룹, 재선 그룹, 3선 이상 중진 그룹, 혁신 그룹, 주류, 비주류, 원로 그룹 등의 다양한 그룹이 있었고, 공부 모임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고, 설사 있더라도 있으나마나 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간혹 몇몇 소신 있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지만, 극성 세력에게 문자폭탄 몇 번 받으면 의지가 꺾이기 마련이다. 여당 전체가 그러하니 정책이든, 법안이든 문제가 수두룩해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 부동산 임대차 3법이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통과됐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무리수는 방치 끝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 당에서 아무도 견제하지 않으니 국무위원들은 국민 억장 무너지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낸다.

이게 다 여당 정치인들이 역할을 방기해서 생겨난 풍경이다. 바로 극성 세력에 대한 ‘맹종’이 빚어낸 결과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인들 이런 여당, 이런 순종적인 정치를 원했을까. 어쩌면 문재인정부를 시나브로 망가뜨려온 게 지금의 여당 정치일지 모른다.

최근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문장의 단어 몇 개를 바꾸면 이렇게 된다. ‘여당 의원들이 극성 세력에게 맹종할 경우 당과 의원들의 존재감이나 독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 정치의 조종(弔鐘)이 울리지 않게 하려면 여당 의원들이 이제는 그런 맹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극성 세력에 대한 맹종, 그 세력을 뒷배로 활용해 앞에서 활개 치는 소수 선동꾼 의원들에 대한 맹종 말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여당 의원들이 각성해 집권당으로서의 책임 정치를 펼치고, 국정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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