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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의 지금 유럽은] 우물 안 개구리된 한국 젊은 인재들… IB 과정 운영 확대 절실

글로벌 인재 양성 서둘러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내 젊은 인재들의 해외 진출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영국유학박람회에서 교육기관 관계자들이 유학 준비생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국민일보DB

공자는 1년이 있다면 농사를 짓고, 10년이 있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이 있다면 사람을 키우라고 했다. 교육은 그만큼 장기 비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며칠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는데, 필자도 경험자로서 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안다. 필자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1980년대 중반에는 학생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야말로 학생, 부모, 선생의 유일한 공통목표였다. 장차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가진 학생들이 많지 않다 보니, 시험 점수에 따라 전공보다는 학교 이름을 선택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게다가 입시제도도 수시로 바뀌면서 불확실성도 더욱 커졌다. 지금도 이러한 경향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인생에는 훨씬 많은 기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럽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 나라 대학에 진학하지만 글로벌 비전을 가진 일부는 일찍부터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그리고 그 길이 제도적으로 열려 있다. 물론 외국에서도 좋은 대학은 입학 경쟁률이 높다. 하지만 국경을 초월해 자신의 적성과 목표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는 폭이 우리보다는 훨씬 넓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국내 제도의 틀 속에서만 경쟁해야 한다면 이는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오늘날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손해이다. 특히 국내 교육보다 외국 교육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더욱 꽃피울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제기구에 근무하면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적 능력과 성실성은 대체로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국제무대에 늦게 도전하다 보니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젊은 인재들이 조기에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은 매우 제한적이다. 중고등학교 때 해외로 이주해 그 나라 입시를 치르거나, 국내 특수고에서 해외 진학지도를 받거나, 일반고에서 국내 입시를 준비하는 것과 별개로 스스로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SAT) 등을 보는 방법 정도가 있다.

해외 대학들은 우리나라 고교에 대해 잘 모르므로 국내에 해외 진출을 꿈꾸는 수재가 있다고 해도 이 학생의 수준이 글로벌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될 방법이 없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와 글로벌 시스템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고교 성적평가에도 토플(TOEFL)처럼 전 세계 학생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의 경우 SAT가 이 역할을 하지만 더 넓게 보면 1968년 스위스에서 등장한 IB(International Baccaloreate)가 우리나라 고교 시스템과 글로벌 시스템을 이어줄 수 있다.

이 IB 과정은 150개 이상의 나라, 5000개 이상의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가 현재 15개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만 해도 85개 학교가 IB 과정을 운영 중이다. 대학입시를 위해 고교에서 2년간 영어로 진행되는 IB 과정은 희망 전공 분야와 관련된 6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면 된다. 각 과목은 7점 만점이며, 여기에 에세이 등 기타 항목이 포함돼 총 45점 만점이다. IB 과정을 통해 전 세계에서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은 매우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KAIST, 서울대, 연세대 등이 IB 성적을 인정해준다.

글로벌 비전을 가진 학생이 국내 고교 졸업 후 해외 대학에 제도적으로 진학할 수 있게 해주는 IB는 주입식이나 단순 이해보다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시험도 논술·발표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다. 또한 자신의 진로를 미리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해주며, 사회가 글로벌 인재를 조기에 길러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개인의 능력도 매우 중요하나 우리나라처럼 자원도 별로 없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숙명을 지닌 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IB 과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해외 진출 의지와 능력이 있는 학생에게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국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다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첫째는 고급 두뇌의 해외 유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상 소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돼 있으며, 지금도 많은 학생이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해외로 향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와 반드시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둘째는 빈부격차 문제이다. 즉, 돈 있는 집 학생만 해외로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재에는 국내의 IB 과정이 학비가 비싼 국제학교 등에 주로 개설돼 있으나 국가 지원을 확대할 경우 일반고에도 개설이 가능하며, 장학금제도 등과 연계될 경우 보다 많은 학생의 글로벌 비전 실현을 위한 토대가 구축될 수 있다.

한편 국가 지원으로 IB 과정에 대한 비용 부담이 지금보다 줄어든다고 해도 해외 유학 비용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학비가 비싼 영국 미국 등과는 달리 공교육 체계가 발달한 영어권 국가와 유럽 대륙에는 등록금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학교들도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생 할인제도와 주택수당 등의 사회복지 혜택도 받을 수 있으므로 의외로 유학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도 입시와 관련된 학원비, 비싼 대학 등록금 등 국내 시스템 내에서 차지하는 금전적 부담도 이미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닌가.

물론 지금 IB 과정을 확대해도 적어도 3∼5년 이후에나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시스템을 글로벌 시스템과 연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긍정적 요소들을 감안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구체적 추진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이러한 전략적 준비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나 국제기구 수장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을 아쉬워만 한다면, 국내에 존재하는 작은 파이를 향해 수많은 인재가 질주하는 무한경쟁 속에서 창조적인 일에 쓰여야 할 에너지가 글로벌 비전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소진돼 버릴 것이다.

OECD 국제교통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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