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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마리 앙투아네트의 누명

천지우 논설위원


누군가의 명언으로 굳어져 계속 쓰이는 말 가운데 출처가 불분명한, 즉 어떤 유명 인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도 그 사람의 발언으로 잘못 알려진 말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다.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백성들의 궁핍에 대해 전혀 무지해서 저런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입증하는 기록은 없다. 누군가 지어낸 소문이 사실로 굳어진 게 아닐까 싶다. 사치스럽게 살다 단두대에서 처형된 왕비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 이 말은 오랜 세월 동안 면면히 살아남아 지금도 심심치 않게 소환된다.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빵을 운운한 발언 때문에 ‘현미 빵투아네트’라는 조롱을 받았다. 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현안질의에서 아파트 공급이 부족한 상황과 관련해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아파트를 단시일 내 지어 공급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임기 내내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강조해온 김 장관의 발언이어서 역풍을 맞았다. 워낙 부동산 민심이 안 좋아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곱게 들리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은 김 장관의 발언을 “빵투아네트 같은 소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 인용에 오류가 있는 비난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야말로 억울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군가를 비난할 때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과 함께 본인 이름이 소환되니 말이다. 그의 실제 삶도 억울한 면이 있어 보인다. 오스트리아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난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가로 시집와 18세 때 왕비가 됐다. 다른 왕비들에 비해 특별히 더 방탕하거나 사치했다고 보기는 힘든데도 당시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지독한 미움을 샀다. 결국 그는 프랑스혁명 때 혁명정부가 급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친상간 등의 죄목으로 처형됐다.

천지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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