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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문화스케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5분가량 가만히 서 있었다. 푯말에 적힌 ‘테이크아웃만 가능합니다’라는 문장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창가 자리가 비었는지 체크하기 바빴는데,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어 헛웃음만 새어 나온다. 어디 걸터앉기도 뭣해서 카페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그림은 눈에 익고 천장의 조명은 여전하다. 음료와 곁들일 수 있는 쿠키는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테이블과 의자만 매장 한쪽에 탑을 이루고 있다. 머쓱한 시간이 흘러간다.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나오는 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잘 지내니?”가 아닌 “괜찮니?”로 시작하는 인사다. 친구는 경기도에서 작은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너야말로 괜찮아?” 내가 되묻자 예상했던 침묵이 흐른다. 오늘은 종일 머쓱함을 안고 지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네. 처지가 말이 아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할 수가 없다. 임기응변이 도움이 될 리 없다. 잠자코 가만 있었다. “그냥 네 목소리 들으면 힘이 좀 날 것 같았어.” 통화가 끝났지만 한동안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다. 간절한 마음이 그리로 가고 있기를 바라면서.

“처지”라고 말하면 곤란함이 먼저 떠오른다.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을 가리키는 말인데, 가치중립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처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종 ‘놓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일까. 아무리 예상하고 준비해도 대처하기보다 수습하기 급급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올겨울, 사방이 그런 순간들로 그득하다. 카페 밖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가 한창이다. 코로나19 이후 마스크와 장갑 등 방역용품뿐 아니라 플라스틱과 비닐로 만들어지는 음식물 포장 용기의 양이 늘었다고 한다. 이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요철이 많은 길을 맨발로 걷는 기분이다.

그날 밤, 우연히 집콕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작들을 보았다. 쌓여가는 우울과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개중 어릴 적 찍은 사진을 보고 포즈를 똑같이 따라 하는 아이디어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과거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닌, 그 시간을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능동적인 행위였다. 부쩍 성장한 아이들은 어릴 때처럼 나란히 앉아 이불 밖으로 발을 내민 채 환히 웃는다. 머리 스타일도 변했고 그사이 안경을 쓰게 됐지만, 쨍한 웃음만큼은 여전하다.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웃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일상의 사소함을 긍정하는 웃음이다.

어느새 나 또한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여기는 동해구나, 가을이었구나, 밤바다 앞에서 회를 먹었구나, 아까 낮에 통화했던 친구가 나를 보러 와주었구나, 2012년이었구나…. 과거에 있었던 반짝였던 시간들을 떠올리느라 밤이 길어졌다. 왜 찍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사진도 있었지만, 어떤 사진은 보자마자 그때 그 순간이 물밀듯이 선명해졌다.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못하게 됐는지 따질 때에는 머리가 지끈거렸었다. 분하고 슬프고 짜증이 났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이었기에 아무래도 그 무게와 밀도가 컸던 모양이다. 그래, 나에게도 다른 시간이 있었다.

운신의 폭이 잔뜩 좁아진 시기다. 새로 어떤 일을 도모하기에는 자신감이 바닥나버렸다. 12월이지만 내년 계획을 세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회를 움직이는 커다란 부분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호기롭게 맞섰다가는 세상의 거대함에 놀라고 갑갑함에 짓눌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작은 부분들을 가꾸고 사소한 것에서 소중함을 발견할 수는 있다. 힘든 지금도 언젠가는 ‘다른 시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이를 가능케 한다.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라는 노래가 문득 떠오른다. ‘Boy with Luv’라는 부제처럼 사랑에 빠진 소년에 대한 이야기지만, 크게 보면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드는 주변의 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소한 게 사소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너라는 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특별하지”와 같은 노랫말을 보라. 지금 이 시기에 더없이 적확하게 들어맞는다. 사소한 게 사소하지 않게, 우리가 봉착한 현실이자 그 현실을 긍정하는 마법이기도 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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