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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필리버스터

이흥우 논설위원


21대 첫 정기국회가 지난 9일 필리버스터 속에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단독 처리를 막겠다며 시도한 이 필리버스터는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방해라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 불과 3시간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정기국회 회기가 이날 자정 종료돼서다.

정기국회에 이어 소집된 12월 임시국회에서도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안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 대상이다. 필리버스터 목적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데 있는 만큼 발언에 나선 의원들은 시간을 최대한 끌려고 한다. 그리고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증명하듯 국회 최장 발언 기록이 새로 쓰였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11일 오후 3시24분부터 다음 날 오전 4시12분까지 12시간47분 넘게 필리버스터를 해 이종걸 전 의원의 12시간31분 종전 기록을 깼다. 세계 최장 기록은 1957년 미국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의 24시간18분이다.

필리버스터의 주 목적이 시간끌기에 있다보니 안건과 아무 상관 없는 발언들을 쏟아내기 일쑤다. 그래도 작금의 필리버스터는 정도가 심해 ‘아무 말 대잔치’ ‘막말 경연장’으로 변모한 느낌이다.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은 13일 “(문재인 대통령의 여야 협치 발언은) 야당에 엿 먹으라는 얘기”라고 험한 말을 했다.

앞서 같은 당 이철규 의원은 ‘아녀자’ 발언으로 여성 비하 논란에 휘말렸고, 검사 출신 김웅 의원은 “성범죄는 스트레스 충동 탓”이라 했다가 “조두순의 재범을 막으려면 그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느냐”는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이에 비하면 과거 법 조문이나 소설을 지루하게 읽어내려가던 의원들의 방식은 애교에 가깝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한다고 해서 목적을 달성하긴 어렵다. 실리보다 명분 쌓기 측면이 강한 투쟁인데 이런 식의 필리버스터는 국민의힘에 득이 되기는커녕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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