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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만 돼도 수·과학 지긋지긋하다는 아이들… 해법 없나

[이도경의 에듀 서치]


한국의 초등·중학생들은 세계에서 공부를 가장 재미없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죠. 대견하다고 해야 할까요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요. 싫은 공부를 하느라 애쓰는 딱한 아이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국제 교육성취도 평가협회’가 얼마 전 발표한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rends in International Mathematics and Science Study·팀스) 얘기입니다. 초등 4학년과 중학 2학년을 대상으로 4년 주기로 시행되는 국제비교 연구인데 이번에는 58개국 초등학생 33만명, 39개국 중학생 25만명이 참여했답니다. 한국은 성취도 평가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았죠. 초4는 수학 3등과 과학 2등, 중2는 수학 3등과 과학 4등입니다.

하지만 수학·과학을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중2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연구의 중2는 4년 전 똑같은 연구에서 초4로 참여했습니다. 다시 말해 4년 전 연구에 참여한 초4가 성장해 이번 연구에선 중2로 평가를 받은 겁니다. 비교해보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엿볼 수 있겠죠.

이번 중2가 초4일 때 ‘수학을 매우 좋아한다’고 말한 비율은 19%였습니다. 5명 가운데 1명만 수학을 좋아한다고 말한 겁니다. 4년이 지나 중2가 됐을 때 이 비율이 8%로 떨어지게 됩니다. 10명 중 1명도 안되는 수치죠. 반면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초4 때 35%에서 중2 때 61%로 껑충 뛰었습니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게 된 학생들이 무더기로 발생한 겁니다. 61%란 수치는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일본·대만(56%), 홍콩(48%)보다 높았고, 한국처럼 악명 높은 입시제도를 운영한다는 싱가포르의 경우 35%에 불과했습니다.


과학 공부에 흥미를 갖고 있다가 잃는 아이들은 더욱 많습니다. 초4 때는 42%가 ‘과학을 매우 좋아한다’고 응답했다가 중2로 올라가는 동안 30% 포인트가 떨어져 나가고 12%만 남게 됩니다. 반면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학생은 14%에서 47%로 급증하게 됩니다. 47% 역시 세계 1등으로 2위 일본(35%)과 격차가 상당하며 싱가포르(14%)보다 3배 이상 높습니다.

증가 폭도 두드러집니다. 과학을 좋아하지 않게 된 아이들이 같은 기간 일본은 25% 포인트, 대만은 19% 포인트, 홍콩은 11% 포인트, 싱가포르는 3% 포인트 증가합니다. 한국은 무려 33% 포인트입니다. 한국의 수학·과학 교육 시스템이 비슷한 문화적 배경과 교육 환경을 가진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학생들을 더 질려버리게 한다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팀스가 시행된 1995년 이래 비슷한 추세를 보여 왔습니다. 익숙한 얘기죠. ‘우리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지만 가장 공부를 싫어한다.’ 공부는 원래 인내와 고통을 수반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고통스럽더라도 더 몰아붙여야 한다는 말에 수긍이 갑니다. 인적자원 말고 가진 게 없는 나라 아이들의 숙명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고작 10대 초반 공교육을 받은 지 몇 년 안 된 아이들이 수학과 과학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상황,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교육 당국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팀스 결과가 보여주듯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2012년에 초등학교에서 ‘스토리텔링 수학’을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나 실생활 사례를 적용해 수학을 재미있게 가르친다는 개념이었죠. 하지만 국어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겐 수학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수학 퀴즈를 이해하려면 국어 실력이 필요했으니까요.

2015년에 고시된 새 국가 교육과정(현행 교육과정)에선 ‘공부할 내용을 줄이되 즐거운 공부가 되도록 한다’는 접근이 이뤄집니다. 그래서 공부할 분량을 20%가량 깎아내고 토론과 참여 수업을 통해 흥미를 끌어올리려고 했죠. 과학에선 딱딱한 이론이나 계산 수업보다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실험을 강화했습니다. 이번 팀스에 참여한 초4, 중2는 이 교육과정에 따라 공부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자유학년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도입됐습니다. 한 학기 혹은 두 학기 동안 시험 부담 없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찾아보는 시간을 허용해보자는 취지의 정책입니다. 꿈을 발견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상태에서 공부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반영된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팀스 결과가 보여주듯 자유학기제와 새 교육과정도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런 정책들이 조금씩 상황을 호전시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초등학생은 성적을 산출하지 않고, 중학교는 절대평가로 전환한 지 꽤 됐는데도 백약이 무효인 듯합니다.

코로나19가 미래교육 논의를 촉발했습니다. 교육부는 발 빠르게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란 개념을 내놨죠.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가르치는 ‘복합화’, 인공지능·가상현실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교실’, 이런 교육을 뒷받침해주는 ‘공간 혁신’ 같은 아이디어들을 제시했습니다.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내년엔 고교학점제용 국가 교육과정 논의도 본격화되고 대입 개편도 따라붙겠죠.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하지만 공부를 지긋지긋해 하는 학생들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미래교육 논의는 이 지점부터 얘기를 다시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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