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우리듯… 커피 함께 우려 마시며 구원의 기쁨 나눠요”

[코로나19시대 이제는 문화전도다] 커피로 복음 전하는 양탕국<5>

2018년 서울 덕수궁에서 열린 궁중문화축전에서 참가자들이 양탕국 우림법을 체험하고 있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었다. 고종황제의 붕어(崩御, 임금의 죽음)와 함께 일어난 독립운동은 3·1만세운동으로 분수령을 이뤘다. 100년 전 독립의 열망으로 일어난 그 운동을 커피, 커피문화, 양탕국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커피문화라는 말은 많이 하는데 커피문화란 도대체 뭘까.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한국의 김장문화와 터키식 커피문화와 전통이 등재됐다.

터키식 커피문화란, 터키에서 커피를 만드는 방법과 그 방법이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전통과 아우른, 커피로 창조된 문화다. 즉, 커피문화란 커피를 만들면서 만드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교감이고 소통이다. 영적인 구심점이라는 의미다.

현대 커피문화는 어떠한가. 커피문화 선진국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에선 많은 커피가 수입되고 소비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우리만의 커피문화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커피를 만들어 먹는 우리만의 문화를 갖고 있는가.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일본식 핸드드립으로, 미국식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만든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것, 우리의 커피 추출 방법은 없다.

양탕국은 독창적인 우리의 커피 이름이다. 그런데 이름만 독창적이면 뭐하겠는가. 양탕국이라고 하면서 외국계 커피 메뉴 이름을 그대로 빌려 카페라테, 아메리카노, 카푸치노라는 커피를 만든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갓을 쓴 외국인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울 뿐이다.

양탕국 우림법을 통해 막사발에 담은 커피.

2014년 가을,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들이 경남 하동 커피문화독립국 양탕국을 찾아왔다. 2015년 서울 덕수궁에서 궁중문화축전을 여는데 한국적 커피문화를 선보일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궁중이라는 한국적 테마를 사용하면서 에스프레소나 핸드드립을 할 수 없었기에 대기업 커피 브랜드도, 유명 커피 브랜드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제시한 것이 ‘양탕국 우림법’이다. 복잡한 기계나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한국 고유의 차를 우려내듯 자연스럽게 커피를 만드는 우림법을 선보였다. 양탕국 절임법, 양탕국 감응법 등 우리의 전통 음식 문화에 기반한 커피 추출법은 궁궐을 찾은 탐방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새로운 개념의 커피, 양탕국을 각인시키는 좋은 계기였다.

양탕국이라는 커피문화를 만들면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계기는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였다. 1910년 강제로 빼앗겼던 제국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국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국토는 회복됐다. 하지만 곧이어 일어난 6·25전쟁과 70~80년대 산업화를 거치며 정신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눈에 보이는 것들만 좇아갔다.

그 결과, 우리는 땅의 독립은 이뤘지만 의식의 독립은 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일본에 지배당했던 문화를 그대로 이어갔다. 서양 문화도 정신없이 받아들였다. 그것이 우리의 커피문화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커피를 좀 만든다는 사람들은 모두 일본이나 유럽의 커피 추출 방식을 추구한다. 우리의 것을 만들어 낼 엄두조차 못한다. 땅의 독립, 겉으로 보이는 독립은 했지만 보이지 않는 의식세계의 독립은 하지 못한 것이다. 광복으로 일본이 물러갔지만, 사회 곳곳에 숨은 일제의 잔재를 당연히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의식을 독립하지 않으면 몸도 독립할 수 없다. 몸은 의식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의식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지 않고 눈에 보이는 교회 건물에 머물러 있다면 종교인일 뿐 예수님의 지체로 살아가지 못한다.

신앙인은 출석 교회에서 기도 생활과 예배 생활, 봉사를 철저히 하지만 그것이 교회 안에서만 이뤄지는 종교생활이 아닌지 늘 점검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이 소리 없이 외치는 영의 울음을 바라보지는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구원받은 기쁨을 누리면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기쁨을 나눠줘야 하는데 거부당할까 봐, 멸시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 양탕국 살롱커피문화로 바라보는 전도의 모습이 있다. 차를 우려내듯 커피를 우려서 내리는 양탕국 우림법은 우리의 문화이며 이야기다. 커피를 주제로 하면 사람들이 모인다. 남녀노소, 인종,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일 수 있는 매개가 된다. 그것이 커피이고 커피문화다.

우리의 이웃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기쁨을 모른다. 그 기쁨을 우리만 누리겠는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식이 자유케 돼야 한다. 내 가족, 내 교회만이 아니라 소외된 이웃과 신앙을 위한 교회, 성도가 돼야 한다. 100년 전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가 지금 우리를 “갇힌 의식에서 독립하라”고 깨우치는 함성이 아니었을까.

홍경일 하동 양탕국 대표

[코로나19 시대 이제는 문화전도다]
▶①‘서양의 끓인 국물’ 양탕국… 커피문화를 전도에 활용하다
▶②‘이상한 카페’… 양탕국에 손님이 오면 전도가 시작된다
▶③언더우드는 조선 첫 ‘살롱커피 바구니 전도자’?
▶④고종과 커피의 첫 만남… 그때 그 시절 분위기 카페관에 재현
▶⑥성도들, 커피 알갱이처럼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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