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많았던 공정위 M&A 결론, ‘요기요+배민’은 순풍탈까

[스토리텔링 경제] 23일 최종 결정 놓고 관심 집중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배달앱 이야기다. 배달앱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언택트) 소비 증가 현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시장이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는 23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요기요'의 '배달의민족' 인수·합병(M&A) 허용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앞서 공정위 사무처 심사보고서상 잠정 결론은 조건부 승인. 업계 2위 요기요를 운영하는 독일회사 딜리버리히어로(DH)가 1위 배달의 민족을 인수하려면 요기요를 팔라는 단서를 붙인 '사실상 불허' 결정이다. 물론 1심 재판부 격인 전원위원회에서 최종결론은 바뀔 수 있다.

공정위의 M&A 심사는 해당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지만 지금까지 ‘안 좋은 추억’도 많았다. 1999년 현대차와 기아차 합병 승인, 2016년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불허 등은 오히려 경쟁을 제한하거나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5조원에 달하는 배달시장 ‘빅딜’에 공정위의 최종결정이 주목되는 이유다.

대한항공 팔면 아시아나 인수 승인?


공정위가 위치한 세종시 배달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다. 업계 3위인 쿠팡이츠는 지난달 24일 세종시 서비스를 개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라이더 1인당 1개 배송 시스템과 실시간 위치확인 기능, 파격적인 할인쿠폰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쿠팡이츠의 배달시장 점유율은 6.8%(9월 기준)에 불과하지만 업계에서는 조만간 쿠팡의 자금력과 배송시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와 카카오 등 공룡 플랫폼도 배달시장 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DH는 공정위가 이처럼 배달시장의 역동성을 감안하지 않고 현재 보이는 ‘숫자(시장점유율)’만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미국 배달시장의 경우 2017년 55%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던 1위 업체 그럽허브는 단 2년 만에 4위 업체인 도어대시에게 1위를 넘겨줬다.

업계 관계자는 16일 “최근 진행 중인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예로 들면 공정위가 대한항공을 팔면 아시아나 인수를 승인해주겠다는 꼴”이라며 “국가 간, 산업 간 경제가 무너지는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잠정 결론”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사무처도 할 말은 있다. 두 업체가 합쳐지면 시장점유율 90%가 넘는 독과점 기업이 탄생하는데 이에 따른 가격인상 등 소비자 후생 감소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여러 안전장치 중 가장 강력한 인수 주체 매각이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공정위 M&A 아픈 추억들

공정위의 M&A 심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때부터다. 당시 공정위는 합병으로 인해 독과점 문제가 발생하지만 기아차 회생을 위한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산업정책적 이유로 합병을 승인했다. 공정위는 당시 의결서에서 국내 승용차 시장의 경우 대우차가 36.8%나 점유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독과점 폐해가 어느 정도 억제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합병에 따른 수출 확대 효과로 국내 시장에서는 자동차 가격인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공정위의 전망은 빗나갔다. 대우차는 사라졌고 현대·기아차는 국내시장 점유율 90%가 넘는 초독과점 기업이 됐다. 게다가 현대·기아차는 같은 차종이라도 오히려 해외에서 싸게 팔고 국내에선 비싸게 팔아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병배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2007년 대한상공회의소 초청강연에서 “일본 자동차산업은 치열한 국내 경쟁이 벌어지는 반면 우리나라는 (공정위 결정에 따라) 사실상 독점으로 소비자 후생이 감소했다”고 반성했다.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기도 했다. 공정위는 2016년 당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심사를 차일피일 미룬 채 청와대에 3차례 보고하며 수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내린 ‘조건부 승인’ 결정은 ‘불허’로 180도 바뀌었다. 경쟁 제한성 등 시장 영향력 분석은 뒷전이었고 청와대만 바라본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영업자와 배달라이더가 연결된 정치적 이슈가 이번 M&A 최종 결정에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외국기업(DH)이 국내 시장을 독식해 배달료를 올리면 ‘을’인 자영업자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민주당 내 비판적 시각이 공정위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M&A 전문가가 없다

공정위에서 M&A 심사 실무를 총괄하는 시장구조정책관(국장)은 내부적으로 인기 있는 자리가 아니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불공정행위를 적발하고 수천억원대 담합 과징금을 부과하는 공정위 ‘본업’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경제분석 등 전문성이 그 어느 자리보다 요구되지만 통상 1~2년 간격으로 순환 인사가 난다. 그러다 보니 시장상황을 다면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시장점유율 등 경쟁 제한성만을 따지는 경직된 결정에 익숙하다.

신속성도 떨어진다. 지난해 7월 심사가 시작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여전히 심사 중이다. 김상조 당시 공정위원장은 유럽 경쟁 당국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국 공정위가 합리적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지만 지금은 유럽 경쟁 당국 눈치만 보고 있다. 공정위 전직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혁신경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공정위 M&A 결정은 전통제조업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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