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바뀌어야… ‘격투기 정치’ 아닌 ‘기록경기 정치’를”

[논설위원의 이슈&톡] 이광재 민주당 의원 인터뷰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의원은 대권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난 부족한 사람”이라면서 “단지 역사 발전의 도구로 쓰이고 싶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국회 의원회관 643호.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실이다. 이 의원 집무실 한쪽 벽 전체는 칠판으로 돼 있다. 칠판 한쪽에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 다 소용없다. 복(福)을 지어라, 복을 지으면 마음이 편하다. 마음속에 잡초를 심지 마라. 역사 발전의 도구가 돼라’는 글이 있다. 이 의원의 좌우명이다. 그 다음에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삶의 질 1등 국가, 사람 투자 1등 국가’가 큰 글씨로 도드라지게 쓰여 있다. 이 의원이 바라는 나라이자,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한다. 이어 ‘기술 전쟁에서 승자가 되는 길’과 ‘국가 재설계’라는 주제에 대한 구체적 방법이나 아이디어들이 메모돼 있다. 이 의원이 요즘 한창 공부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외에도 사무실 곳곳에 붙여 있는 메모지와 책상 앞에 세워진 보드, 각종 자료 등을 보면 사무실 주인이 공부 참 열심히 하는 사람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의원실이라기보다는 여느 기업체 회의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의원이 최근 ‘노무현 옳았다’(포르체)라는 책을 냈다.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담긴 책이다. 지난 15일 의원실에서 그를 만났다.

-무슨 책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통합의 나라, 디지털경제 리더 국가, 변방이 아닌 세계의 중심이 되는 국가를 꿈꿨다. 그것을 위해 연정을 제안하고, 디지털정부혁신을 했고, 동북아 균형자론을 펼쳤다. 그게 다 이뤄지지 못했는데, 그 꿈이 지금도 의미 있다고 본다. 그 꿈을 완성시키기 위해 정책적으로 설계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냈다. 작은 국가설계 제안서라고 보면 된다.”

-지금 여야를 보면 통합의 나라는 물 건너간 것 아닌가.

“지금 코로나19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정치인들의 문제의식이 떨어지는 것 같다. 정글의 짐승들도 가뭄이 들면 냇가에서 사냥을 하지 않는다. 사자가 냇가에서 물 먹으러 오는 동물을 다 잡아먹으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결국 사자도 죽게 되기 때문이다. 짐승들도 그러는데, 우리는 코로나 앞에서도 싸우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을 갈 때 자신이 가진 황금을 다 나눠주려고 하니, 측근들이 뜯어말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알렉산더가 ‘난 이제 더 큰 황금을 가질 텐데 지금 가진 황금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정치인들도 그렇게 더 크고, 새로운 꿈을 내다보며 정치를 해야 하는데, 지금 가진 기득권만 놓고 그렇게 다투고 있다.”

-어떻게 해야 달라질까.

“여의도가 ‘격투기 정치’에서 벗어나 ‘기록경기 정치’를 펼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격투기 정치는 너의 실수가 나의 승리인 정치다. 반면 기록경기 정치는 육상이나 수영처럼 싸우지 않고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치를 하고, 누가 더 좋은 기록을 냈는지에 따라 국민들한테 평가를 받는 정치다. 요즘 경제계를 보라. 적대적 기업들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시대 아니냐. 사회 곳곳이 그렇게 격변하고 있는데, 이제 정치도 변해야 한다.”

-정치를 변화시킬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

“우리나라에 직업이 2만개인데 300명 의원이 이들의 요구를 다 수용할 수 없다. 국회가 국민 참여 정책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장치다. 그래서 국민들이 인터넷으로 정책 제안을 하고 일정수의 동의를 얻으면 자동으로 전문가들이 입법 타당성을 검토하게 하고, 타당성이 있으면 입법화의 수순을 밟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국민이 직접 입법에 참여하고, 입법이 된 경우 정책 제안자에게 공천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면 TV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스타 신인 정치인’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의원들이 일을 하지 않고선 버틸 수 없게 된다. 국회의장에게도 제안해 도입을 검토 중에 있다.”

-야당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10년 만에 국회로 돌아왔는데, 상임위원회에서 토론이 붙으면 야당이 정부·여당보다 논리 면에서 앞서야 하는데 오히려 굉장히 밀리더라. 야당도 공부를 열심히 해 실력을 키워야 한다. 내가 초선의원들을 만나면 상임위에서 발언할 때 맨 앞줄에 앉은 장차관을 염두에 두고 얘기하지 말고, 그 뒷줄에 앉은 실국장들, 과장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얘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그런데 그들을 설득시키려면 의원들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야당은 앞줄에 앉은 사람과 국회 밖의 지지자를 겨냥한 목소리만 낸다. 여전히 과거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야당도 국가의 미래 설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책에서 586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더라.

“(그는 책에서 586세대를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고,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 자리도 내주지 않는 욕심 많은 꼰대’ ‘컬러TV가 등장했는데 거실에 떡하니 버티고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 흑백TV’라고 묘사했다). 대학 다닐 때 명사들의 모임인 ‘한양로터리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들의 특징이 3가지 있었다. 정기적으로 만나 공부를 하고, 메모광이며,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이었다. 성공한 사람들도 그러는데 586세대는 시대에 맞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짐승도 1년에 한번은 털갈이를 하는데, 스스로 혁신을 하지 못하니 미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주고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역할 전환을 해야 한다.”

-기술을 이해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디지털 혁명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기와 맞물려 한반도가 새로운 문명 발상의 거점으로 변모할 적기다. ‘디지털그린’을 표방한 한국형 뉴딜을 대대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한국이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강자가 될 기회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생명공학 분야도 급팽창하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가 앞서 있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삶에 이미 들어와 있는 미래를 발견하고 그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리더가 필요하다. 디지털그린 강자가 되면 국제사회에서 외교 역량도 커질 것이다.”

-교육판 넷플릭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디지털 산업 경제 시대를 맞아 출신 학교나 학력과 상관없이 창의력과 사고력의 중요성이 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을 안 나온 창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지식과 정보가 모이는 지식 제공 시스템을 구축해 온 국민이 무료로 이용하게 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양질의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공공재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계층 이동 사다리를 마련해주는 차원이기도 하다(그는 책에서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춰 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도 했다).”

-삶의 질 1등 국가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요즘의 불평등지수가 1920년대 대공항 직전과 비슷하다고 평가한다. ‘사다리’들이 사라져 계급도 고착되는 추세이기도 하다. 경제는 발전하고 있지만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해서는 일과 소득, 주거, 교육, 의료, 문화 5종 세트가 중요하다. 국민이 안정적 소득 기반을 갖게 해주고 주거, 교육, 의료, 문화 분야에서 저비용 구조를 만들어준다면 삶의 질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 정치가 할 일도 그런 사회를 빨리 만드는 일이다.”

-통합의 대통령, 기술 대통령, 교육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했는데, 이 의원이 제격 아닌가.

“사실 2년 전부터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내가 적극 도울 테니 대선에 나가라’고 권유해 왔다. 그런데 최근 김 지사의 2심 재판이 잘 안 풀려 향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나는 대통령은 마음이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인물이어야 국민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국정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거기에 김 지사가 제격이다.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대권보다는) 통합의 나라, 기술 강국을 만들고 변방의 역사를 끝내는 일에 확실히 기여하려고 한다.”

이 의원은 매일 아침 6시면 출근한다. 코로나19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국민들에게 미안해 어떻게든 도움이 될 방법을 찾기 위해서란다. 이날 아침에도 5시30분에 집을 나서며 ‘과연 나는 정치인으로서 잘하고 있는 걸까’라고 스스로를 돌아봤다고 한다. 그는 요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빨리 경제의 계절로 넘어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나라가 갈등 국면에서 빨리 벗어나 국민 생존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의도의 아귀다툼 속에서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국민을 위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는 의원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프로필
-1965년생, 강원도 평창
-원주고, 연세대 법학
-국회의원 노무현 보좌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제35대 강원지사
-싱크탱크 여시재 원장
-17대·18대·21대 국회의원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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