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젤리처럼 생긴 캡슐형 세제, 아이가 삼키면 자칫 재앙

소아청소년과학회 주의 당부

삼켰을 땐 호흡 곤란·의식 상실
식도·위장 구멍 뚫리는 손상도
최대한 빨리 응급실 진료 받아야

캡슐형 세제. 한국소비자원 유튜브 캡처

세 살 A양은 지난 6월 집 거실에 놓여있던 공 모양의 ‘캡슐형 세탁 세제’를 갖고 놀다가 캡슐이 터지는 바람에 세제가 눈에 들어가 안구에 큰 화상을 입었다. 생후 9개월 B군은 지난 7월 젤리처럼 생긴 캡슐형 세제 한 개를 삼켰다가 구역질과 구토, 의식 저하 등 중독 증상을 보여 응급 처치를 받았다.

젤리나 사탕 모양의 알록달록한 캡슐형 세제로 인해 올해 발생한 어린이 안전사고 사례들이다. 캡슐형 세제는 물에 녹는 필름 형태 포장재(캡슐)에 1회분의 고농축 액체 세제를 채운 제품들이다. 2012년 국내 첫 출시 이후 세제 양을 일일이 조절해야 되는 기존 제품에 비해 사용이 편리해 가정에서 많이 구입해 쓰고 있다.

캡슐형 세제. 한국소비자원 유튜브 캡처

하지만 색상이 화려하고 형태가 젤리, 장난감과 비슷해 어린이가 갖고 놀거나 입에 넣었다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실제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서 6세 미만 어린이의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에는 미국에서 캡슐형 세제를 삼킨 생후 7개월 아이가 병원에 이송된 지 한 시간 만에 숨지는 사고도 보고됐다.

국내에선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과 2018년 캡슐형 세제 중독사고의 사례 분석과 함께 안전조치 강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부터 캡슐형 세제가 어린이보호포장 필수품목에 포함됐다. 또 올해 6월 시행된 화학제품안전법에 따른 ‘안전확인 대상 생활화학제품’으로 지정돼 안전·표시기준을 따르고 있다.

캡슐형 세제 손가락으로 누르는 모습. 한국소비자원 유튜브 캡처

하지만 이 같은 법규의 정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안전사고는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 급기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가정에서 사용 시 주의를 당부하고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열린 소아청소년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 캡슐형 세제 삼킴에 의한 어린이 중독사고 사례가 발표된 게 계기가 됐다. 칠곡 경북대병원 김여향 교수팀은 지난 6월 14개월된 남아가 낮에 집 베란다에 놓여있던 캡슐형 세제 한 개를 먹고 구역 및 구토 증상을 보여 응급실로 급히 이송된 사례를 보고했다. 아이는 세제를 삼킨 후 불과 3~4시간 만에 의식저하와 심한 산혈증(혈액 내 산성이 많아져 나타나는 증상)을 보였고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 호흡기와 투석 치료를 받았다. 구토한 내용물이 기관지로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흡인성 폐렴’까지 동반됐지만 적극적인 치료로 다행히 회복돼 입원 13일 만에 무사히 퇴원했다. 김 교수팀은 이번 사례를 다룬 논문을 대한소아응급의학회지(PEMJ) 최신호에 보고했다.

소아청소년과학회는 21일 “국내에선 캡슐형 세제에 의한 위해 사고 보고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제품 사용이 늘어나면 사고도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원의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따르면 캡슐형 세제로 인한 인체 피해 사고는 올해 2건, 2016년과 2017년 각 1건, 2012~2014년 3건 등 모두 7건이었다. 2016년엔 3세 여아가 캡슐형 세제를 뜯다가 눈과 입에 튀어 안구 손상을 입었다. 2017년엔 어린이가 아닌, 노인의 피해 사례가 신고됐다. 68세 여성이 캡슐형 세제를 젤리로 착각하고 삼켜 소화기계 중독 증상으로 병원에 후송됐다. 이밖에 공식적으로 신고되지 않은 피해 사례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캡슐형 세제 중독의 경로로 삼킴이 가장 흔하고 눈에 튀거나 피부 접촉을 통해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캡슐형 세제를 삼키는 경우 침이 포장에 닿으면서 필름 재질이 녹아 내용물에 노출될 수 있다. 김여향 교수는 “삼키는 경우 일반 세제 중독 보다 훨씬 위험성이 높은데, 일반 세제에 비해 고용량의 계면 활성제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계면 활성제는 인체 세포막 등 조직을 녹일 수 있고 산도가 높아 점막을 직접 손상시킨다.

캡슐형 세제를 삼키면 구역질, 구토, 기침, 질식 및 호흡곤란, 의식상실, 식도 및 위의 궤양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하면 식도와 위장에 구멍이 뚫리는 합병증이 초래될 수 있다. 김 교수는 “특히 구토하는 과정에서 계면활성제 성분이 기도로 들어가면 기관지 및 폐포에 심각한 손상을 줘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캡슐 속 세제가 눈에 튈 경우 각막과 결막에 직접 자극을 주고 심하면 화학적 화상과 그에 따른 각막혼탁 등에 의해 일시적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12년 5~6월 신고된 1008건의 세탁 세제 중독사고를 분석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8%가 캡슐형 세제에 의한 것이었고, 94%가 5세 이하 소아에 의해 발생했다. 캡슐형 세제에 노출된 소아의 경우 다른 세제에 비해 증상 발현 정도는 3.9~8.2배, 입원 치료 4.8~23.5배, 심각한 의학적 결과는 8.4~22.6배 높았다. 다른 세제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혼수, 폐부종, 기관삽관, 심정지 등 중증의 상황도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캡슐형 세제가 담긴 용기는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보관해 접촉 위험 자체를 줄이도록 대국민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등에선 사용하다 만 캡슐형 세제는 반드시 밀봉해 잠금장치가 있는 선반에 보관할 것을 권고한다.

국내의 경우 캡슐형 세제의 어린이보호포장(지퍼백형 등), 포장재 강도, 주의사항 표시 등 안전성 강화 조치가 뒤늦게 취해졌지만 관계당국의 보다 철저한 관리감독 및 정기적인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어린이 삼킴사고 시 올바른 응급처치 요령에 대한 표준화된 문구를 마련해 표기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캡슐형 세제를 아이가 삼켰을 땐 억지로 토하게 해선 안된다. 기도 흡인이나 폐 손상 등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어 최대한 빠르게 응급실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동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캡슐이 식도에 걸쳐진 상태로 터지게 되면 위장 속에서 터졌을 때 보다 더 심각한 손상을 유발하므로 응급실 가기 전에 소량의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 도움된다”고 조언했다. 눈이나 피부에 튀었을 경우엔 가능한 많은 양의 흐르는 물로 세척해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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