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지난 15일 경기도 수원역 건너편 먹자골목으로 한 청년이 들어섰다. 음식점을 찾는 주변 행인들과 달리 그는 한 손으로 접이식 수레를 끌며 골목을 따라 수원역 방향으로 향했다. 수레에는 박스 2개가 실려 있었다. 청년의 뒤를 따르던 한국디아코니아 대표 홍주민(58) 목사는 “큰 박스에 케밥 120인분, 작은 박스에 찐빵 200여개가 들어 있다”며 “수원역 노숙인들에게 드릴 식사”라고 말했다.

홍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난민센터 청년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저녁 수원역 노숙인들에게 케밥을 무료로 나눠준다. 지난 6월 30일 시작해 벌써 25번째다. 이날은 예멘 난민 청년 압둘라(24)와 한국디아코니아협동조합 김상기(65) 이사장이 함께했다. 압둘라는 홍 목사가 지난해 한국디아코니아협동조합과 함께 난민청년 자활을 위해 만든 YD케밥하우스의 주방장이다.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케밥도 모두 그의 솜씨다. 예멘에 있을 때는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2년간 난민 생활을 할 때도 케밥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덜컹거리는 수레 소리를 앞세워 도착한 곳에는 100여명의 노숙인이 줄을 서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무료급식소가 폐쇄된 상황에서 이들이 무료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다. 한 노숙인은 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홍 목사는 “노숙인들이 ‘코로나19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케밥 나눔을 시작했다”면서 “나와 보니 실제로 오래 굶은 분이 많았다”고 전했다. 홍 목사도 매주 이렇게 준비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코로나19는 YD케밥하우스에도 영향을 끼쳤다. 손님이 줄더니 하루 10개도 팔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주변 상권도 침체됐다. ‘디아코니아’(섬김) 정신으로 버티는 가운데 후원의 손길이 이어져 케밥 나눔을 이어올 수 있었다.

홍 목사는 “처음 시작할 땐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못 했다”며 “케밥 한 개에 5000원씩 120개면 60만원인데, 정말 신기하게도 매주 이 금액이 채워진다.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케밥과 함께 가져온 찐빵도 인천에서 노숙인 사역을 하는 ‘내일을 여는 집’ 이준모 목사가 후원했다.


무료 나눔 20여분 만에 케밥 박스의 바닥이 보였다. 찐빵도 거의 소진됐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노숙인들을 보며 함께 연신 고개를 숙이던 압둘라도 그제야 허리를 폈다. 홍 목사는 압둘라를 바라보며 “도움을 받는 자신들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건 그 당시 핍박받던 사마리아인이었다”며 “상처투성이의 난민들이 남을 돕는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길었던 줄이 끝을 보이자 홍 목사 일행은 역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홍 목사는 “장애가 있어 줄을 못 선 사람들, 무료 나눔 소식을 듣지 못한 분들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노숙인들도 국내 난민 아니냐. 우린 이 일도 난민 사역의 연장선으로 본다”며 “바라건대 이런 나눔이 꾸준히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수원=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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