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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조건 없는 사랑

룻기 2장 1~17절


룻기는 이방 여인 룻의 이름에서 비롯된 책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성경책 이름 중 이방 여인의 이름을 붙인 책은 룻기가 유일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룻이 사실상 책의 중심인물도 아니라는 것이다.

룻기는 대부분 등장인물의 발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룻의 발언 횟수와 그 단어 수는 나오미와 보아스에 비해 비중이 상당히 낮다. 가장 많은 발언을 한 사람은 보아스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스는 룻기의 실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나오미와 룻이 보인 ‘헤세드’가 성부 하나님의 헤세드라면, 보아스의 헤세드는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헤세드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아스의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어떤 모습인가.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보아스는 이방 여인 룻을 극진하게 보살핀다. 그가 베푼 은혜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그냥 룻 자체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자기의 재산 손해가 나더라도 상관없이 그녀를 보살폈다. 그것이 보아스가 보인 헤세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도 동일하다. 그가 우리에게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대가를 바래서가 아니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먹을 것을 먹여 주신 이유가 무리와 군중을 만들어 로마를 치기 위한 속셈도 아니고, 민족의 영웅이 되어 존경과 사랑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의 모습 그 자체가 좋아서 행하신 일이었다. 예수님은 결국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살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룻처럼 하면 된다. 룻은 그저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라고 보아스 앞에 엎드려 감사했다.(10절)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뭔가를 자꾸 행함으로써 그 은혜를 되돌리려고 한다. 또 갚아 버리려 한다. 예수님께서 이런 희생을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동일한 희생을 요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 사상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과 인간의 보답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 그 받은 은혜를 속된 말로 ‘퉁치고자’ 하는 마음, 그래서 뭔가 죄책감과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인본주의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희생하신 그 조건 없는 사랑이 이해가 되지 않기에, 어떻게든 내 이성과 상식에 맞게 갚으려는 마음은 바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내게 행하신 헤세드의 사랑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자기사랑, 자기만족이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 없는 사랑을 입은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의 반응은 무엇인가. 그것은 룻의 반응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룻은 보아스의 조건 없는 사랑에 “내 주여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을 했다.(13절) 오히려 내게 은혜를 더 베풀어 달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반응은 이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나 그래도 나는 당신에게 더 큰 은혜를 입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신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때 여전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으로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아직도 복음을 모르는 것이다.

복음은 누림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사역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임할 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자. 이를 통해 우리의 곤고한 삶이 은혜로 열리게 될 것이다.

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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