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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혐한의 차별과 판타지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나이키 재팬이 지난달 27일 유튜브에 공개한 2분짜리 광고를 놓고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오른 지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 조회 수는 1100만회를 훌쩍 넘긴 채 꾸준히 오르고 댓글 또한 쉴 새 없이 달리고 있다. 광고가 이렇게 시선을 끈 건 재일(在日)조선인이나 혼혈 학생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의 민낯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치부가 드러나서일까. ‘넷우익’으로 불리는 혐한 성향 일본 네티즌들은 “일본에 조선인 차별은 없다. 있다고 해도 미움받을 이유가 있겠지” 등의 댓글을 달거나 ‘싫어요’를 누르며 분노하고 있다.

광고에는 민족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10대 소녀 3명이 등장한다. 실제 체험담에 기초했는데 소녀들은 축구를 통해 용기를 얻고 차별과 왕따를 극복한다.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일본인들의 눈총을 받는 여학생은 효고현 재일조선중급학교에 재학 중이며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한다.

넷우익은 왜 광고에 분노할까. 시사평론가인 후루야 쓰네히라의 분석이 그럴싸하다. ‘정직한 보수’를 표방하는 그는 최근 언론사 기고를 통해 나이키 광고에 대한 극우세력의 분노는 ‘숭고한 일본인 사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일본인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예의 바르고 정직한 민족이라고 믿고 있는데 광고가 그 자긍심에 상처를 냈다고 분석한다. 다분히 주관적이긴 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석이 없지 않다. 극우보수 세력들은 ‘일본인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환상에 젖어 있고, 이로 인해 난징대학살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마저 가볍게 부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게 후루야의 분석이다.

이 와중에 혐한 발언을 일삼던 기업인이 재일한국·조선인을 또다시 비하해 물의를 빚었다. 일본 내 차별을 지적한 나이키 광고의 비판이 타당하다는 것을 극우 세력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일본 화장품 기업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 회장은 최근 자사 건강보조식품이 경쟁사인 산토리 제품보다 우월하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산토리 CM에 출연하는 탤런트들은 어찌 된 일인지 거의 전원이 코리아계 일본인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존토리’라고 야유받고 있다”고 적었다. 한국인을 멸시하는 ‘조센징’이라는 표현과 비슷하게 쓰이는 ‘존(チョン)’과 산토리의 ‘토리’를 합성했다. 연간 1조원 넘는 매출액을 기록하는 거대 기업의 대표가 팔순을 코앞에 두고 소비자들에게 보낸 공개 메시지를 이렇게 쓰다니.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하긴 이미 2018년 ‘유전자 연구 결과 일본 민족의 조상은 시베리아에서 왔으며 아시아의 유일한 유럽인’이라는 판타지를 주창한 인물이니 이번 발언은 그리 놀라운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웃어넘기기엔 일본 극우의 정치세력화는 우려스럽다. 길거리 시위에서 ‘좋은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모두 죽여라’ 등의 증오 연설을 서슴지 않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설립자 사쿠라이 마코토는 지난 7월 일본 최고 선출직인 도쿄도지사에 출마해 5위를 기록했다. 그에게 표를 준 도쿄시민이 무려 17만8784명이다. 366만표를 얻어 도쿄도지사에 당선된 고이케 유리코는 또 어떤가. 2016년 재특회 강연회에 참가해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하고 한국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차별과 증오로 얻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자멸을 앞당길 뿐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을 읽고 사색한 끝에 세계적인 철학자 반열에 오른 에릭 호퍼에 따르면 증오심은 자기경멸의 심리에서 싹튼다. 일본 극우의 ‘비뚤어진 환상’은 그들 내면의 죄의식과 쪼그라든 자신감을 드러내는 거울일 뿐이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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