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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험한 말, 틀린 말, 자제할 줄 모르는 말

천지우 논설위원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결제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 메뉴는 지금 안 되세요.”

카페나 음식점에 가면 종업원한테서 듣는 말인데 무슨 의미인지는 다 안다. 하지만 이상한 말이다. 주문을 하라는 요구나, 결제를 무엇으로 할 거냐는 질문을 더 공손하게 하려다 보니 도와드리겠다는 말이 쓸데없이 붙었다. 또 존대 표현이 많이 들어간다고 더 공손해지는 게 아닌데도 사람이 아닌 사물(메뉴)에 존대를 나타내는 어미 ‘-시-’가 쓸데없이 붙었다. 뜻만 통하면 됐지 뭘 그렇게 피곤하게 따지냐고 할 수도 있고, 잘못된 표현이라도 일상에서 통용된다면 새로운 언어습관으로 인정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말을 함부로, 엉망으로 하는 것보다는 바르게 하는 게 낫다. 사람들이 쓰는 말이 어수선하면 그 사회도 어수선하다는 얘기다. 요즘 많이 쓰이는 말 중에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것들 몇 가지를 지적해본다.

개-

주로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속된 표현이다. 그냥 이득도 아닌 ‘개이득’,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닌 ‘개좋아’, 꿀잼의 최상급 ‘개꿀잼’ 등등. 아마도 많은 사람이 접두사 ‘개-’가 멍멍 짖는 ‘개’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할 텐데, 아니다. 그 개와는 관련이 없다. ‘개-’는 원래 ‘거짓 가(假)’에서 비롯된 말로 ‘흡사하지만 다른, 진짜보다 못한’의 뜻을 나타냈다. 살구보다 못한 개살구가 이런 경우다. 그러다 부정적인 의미의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함을 표현(개고생, 개망나니)하더니, 이제는 긍정적인 뜻의 낱말과도 결합(개이뻐, 개멋져)하게 됐다. 의미가 전이, 확장된 것이다.

좋은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개-’는 같은 발음의 욕설을 떠올리게 하므로 쓸 때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어감이 세고 거칠다. 사회가 각박해진 탓에 사람들이 더 자극적이고 험한 표현을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언어의 타락이다. 조지 오웰은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했다. 남이 위악적으로 하는 말이 재미있다고 나도 마구 쓰다 보면 내 생각까지 거칠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논란

언론이 습관적으로 남발하는 단어다. 어떤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이 부딪힐 때 논란이라고 해야 하는데, 다툼의 여지가 거의 없는 사안에도 쓴다. ‘변창흠, 막말 논란 거듭 사과’라는 기사 제목을 보자. 변창흠이 막말 사실을 부인했거나 의혹만 제기된 상태라면 ‘논란’이라고 쓸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시인하고 사과했으면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므로 ‘논란’을 빼야 맞는다.

어떤 연예인이 성형수술을 했는지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면 ‘아무개 성형 논란’이라고 쓸 수 있지만, 누가 성형을 해서 사람들이 보기 싫어한다는 얘기는 ‘성형 논란’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가 있어야 뉴스가 되고, 언론은 그걸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달하려다 보니 논란이란 편리한 말을 선호하게 됐다. 하지만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건 게으르거나 비겁해 보인다.

유감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마지못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유감을 표한다”고 한다.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러운 느낌이다. 즉 내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지, 상대에게 미안함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사과를 사과답게 하려면 ‘죄송’ ‘사죄’ 등 미안하다는 뜻이 분명한 말을 써야 한다.

K-

정부나 언론이 주로 사용하는데, 자랑할 거리가 생기면 무조건 갖다 붙여서 이젠 좀 지겹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K청렴’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자료를 배포해 “도대체 K청렴이 뭐냐. 한국식 청렴은 따로 있냐”는 비판을 받았다. 국산 돼지고기를 굳이 ‘K돼지’로 부르는 경우도 봤다. 뭐든 적당히 해야 그것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 텐데, 자제할 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반발심도 생겨나 자랑스러운 K 대신 조롱하는 K가 만들어진다.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뒤처진 것을 비꼬는 ‘K확보’, 정권의 전체주의적 행보를 꼬집는 ‘K독재’ 등이 그것이다.

결론은 말을 잘 가려서 하자는 거다. 다시 오웰의 말이다.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언어가 고약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쉽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천지우 논설위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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