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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백신 사재기

라동철 논설위원


백신은 특정 질병이나 병원체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하는 의약품이다. 백신을 접종 받아 항체가 생기면 바이러스나 세균이 몸에 들어오더라도 감염을 막을 수 있다. 백신 접종자의 비율이 70% 이상이면 그 사회는 해당 질병에 대해 집단 면역을 갖게 된다. 평소처럼 생활해도 병원균에 감염되거나 타인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경제 회복을 앞당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백신 집단 접종인 셈이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간 결산을 해 보면 백신 확보전의 승자는 대체로 백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발빠르게 움직인 선진국들이다. 캐나다는 인구 대비 5~6배, 미국과 영국은 4배, 유럽연합(EU)과 일본은 2배 이상의 물량을 확보했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도 자국 인구 수보다 많은 물량을 확보했다. 개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초기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제약사에 거액을 지불하고 백신을 선구매한 결과다.

발빠른 대응으로 지긋지긋한 코로나19 늪에서 앞장서 빠져나올 토대를 마련한 이들 국가는 부러움을 살 만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생산량이 제한적인 상황이라 특정 국가가 백신을 지나치게 많이 가져가면 다른 나라에 돌아갈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명분에 이어 23일 화이자와 1000만명분, 얀센과 600만명분 계약을 체결했지만 필요량에는 부족하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주도해 백신 공동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코백스 퍼실리티)를 추진하고 있지만 대다수 가난한 나라들은 내년까지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인구 10명당 1~2명 정도라고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지난달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모든 사람에게 적정가격에 공평하게 보급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진국들의 백신 사재기로 선언문은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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