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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의 세금이야기] 공익단체마저 국고보조금 타려고 손 벌려서야…

혈세 함부로 써선 안돼


국세 공직자로 30여년을 지내고 은퇴 후 지금까지 세무사로서 한평생을 오로지 세금일만 해오면서 느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세금이 쓰이는 용도에 대한 납세자들의 무관심이다. 다시 말해 그렇게 어렵게 낸 세금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세미달자인 영세자영업자들과 전체 근로소득자의 절반에 가까운 영세근로소득자들조차 세금이 쓰이는 용도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그런데 정부는 국가 유지를 위해 국가 예산으로 시행해야 할 각종 국책사업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써야 할 세금 징수액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2021년 정부가 지출해야 할 전체 예산액은 무려 558조원이다. 하지만 세금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예상 수입액은 국세 283조원, 지방세 97조원 합쳐서 380조원 정도다. 차액 부족분 178조원은 국채를 발행하는 등 국가에서 빚을 내 지출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세금으로 모인 한정된 국고(國庫)로 지출해야 할 국책사업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여간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이런 고충을 모르고 자기 판단에 따라 국고에서 나가지 않아도 될 사소한(?) 공익사업들조차 마냥 세금으로 써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무학(無學)에 대한 한이 맺혀 공직에 있을 때 자그마한 장학재단을 설립해 지금껏 어렵고 소외된 계층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2011년부터는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중증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별도의 공익법인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재단과 공익법인의 모금을 위한 필자의 노력이 애처로워 보였던 모양이다. 몇몇 지인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중증장애인을 돕는 그런 공익사업은 나라 세금으로 운영해야 하는 일이라네. 그러니 그렇게 어렵게 고생하지 말고 국고보조금을 받아 제대로 운영해보게나”라고 조언했다. 그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명색이 사회지도층 위치에 있는 이분들조차 예외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주장대로 사소한 공익사업마다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운영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세금이 투입돼야 할까. 아마도 엄청난 세금이 필요할 것이다. 국가라는 큰 틀에서 보면 복지사업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보를 위한 국방사업을 비롯해 보건사업, 교육·환경 문제 개선 사업 등도 긴요하다. 국가 유지에 반드시 써야 할 많은 국책사업이 즐비한 상태에서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공익사업조차 국고보조금을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 차원의 수많은 공익사업은 집행기관인 행정부의 철저한 사전타당성 검토와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의 엄격한 승인 절차를 거쳐 우선순위가 정해진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한정된 세금 수입으로 어려운 계층 모두를 흡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국가는 대안으로 세금 대신에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공익성기부금’ 제도를 만들어 공익사업 단체가 필요재원을 별도로 마련할 수 있게 또 다른 길을 터주고 있다. 아울러 일부 세금 공제 혜택으로 기부 행위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마련돼 있다.

이때 공익사업을 할 수 있는 기관을 ‘지정기부금단체’라고 하며 공익성기부금을 ‘지정기부금’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이 지정기부금 제도 시행으로 해마다 그 규모가 늘었다. 2018년 한 해 동안 무려 14조원의 공익성기부금이 민간인이나 민간단체로부터 나왔다. 국가 세금으로 수행할 수 없는 각종 공익사업을 민간 차원에서 일정 부분 감당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노블레스오블리주의 실천이기도 하며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가끔 공익단체 설립자나 대표자들을 만나보면 일부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국고보조금을 받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심지어 어떤 단체는 자기들이 운영하는 공익법인이 국고보조금을 받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다닌다. 세금 용도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익사업 운영에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급적 국고보조금에 의존하지 말고 규모가 적더라도 민간으로부터 기부받아 운영해 보라고 강권하고 싶다. 만약 국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받아 공익사업 단체를 운영하게 되면 주무관청은 당연히 국고에서 지원해준 돈이 제대로 고유 목적 사업에 잘 쓰이고 있는지 철저하게 감시할 것이다. 감사 결과 조금이라도 잘못 쓰인 게 드러날 경우 행정규제를 받는다. 결국에는 어렵게 설립한 공익단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금은 국민의 혈세다. 그러니 정치인이나 정부 당국자들은 세금을 자기 주머니 쌈짓돈으로 생각하지 말고 공익사업에 대한 예산을 집행할 때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납세자 모두는 자기가 낸 세금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감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귀하디 귀한 세금은 절대로 약방에서 흔하게 쓰고 있는 감초같이 여기저기에 함부로 쓸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용근 사외 논설위원·전 한국세무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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