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 슬세권

한승주 논설위원


‘지하철에서 걸어서 5분.’ 부동산 광고에 흔히 나오는 문구다. 그만큼 편리한 교통이 주거지 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같은 ‘역세권’에 빗대 요즘 ‘슬세권’이 인기다. 슬세권은 ‘슬리퍼+세권’의 합성어로 슬리퍼를 끌고 다닐 만한 거리에 있는 상권을 말한다. 집에서 편한 차림으로 갈 수 있는 편의점, 카페, 영화관, 음식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1, 2인 가구가 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슬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이 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슬세권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거리두기 격상으로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생활 반경도 좁아졌다. 주로 동네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새로운 일상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슬세권의 대표 주자는 편의점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대신 동네 쇼핑이 늘면서 집 근처 편의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전통적으로 편의점 매출이 높은 곳은 유흥가나 관광지, 대학가였다. 한 편의점 회사가 전국 주요 상권의 점포 100개씩을 무작위로 골라 확인해보니 지난 1~11월 주거지역 상권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늘어난 반면 여행지 상권의 매출은 8.4% 줄었다. 편의점에서 일상적인 장보기가 늘었다. 과일 채소를 팔기 시작하면서 신선식품 판매가 증가했다. 대형 창고형 매장인 가구점 이케아는 슬세권을 겨냥해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 ‘이케아 랩’을 운영 중이다.

기술 발달로 슬세권 정보도 풍부해졌다. 이웃 주민끼리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당근마켓은 ‘겨울간식 지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리 동네 한 모퉁이에서 맛있는 군고구마를 판다고 치자. 이 정보는 포털이나 공인된 지도 데이터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안다. 이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네이버 카페도 이용자가 관심지역을 설정하면 동네 소식을 보여주는 ‘이웃’ 서비스를 오픈했다. 집 근처 다양한 인기 카페도 알려준다. 바야흐로 우리 동네 전성시대다.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