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과거의 상처를 통해 나타난 긍휼

룻기 2장 1~17절


룻은 모압에서 건너온 이방 여인이다. 특별히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딸 사이에 근친상간으로 생겨난 족속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 중에서도 모압 사람들을 더욱 경멸했다.

그런데 그 모압 여인 룻을 보아스가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다. 왜 그랬을까. 굳이 얽힐 필요가 없는 일인데 왜 자청하고 나서서 룻을 감싸는 것일까.

그것은 보아스의 과거를 보면 해석이 된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있다. 그런데 그 족보에 보아스의 어머니가 나온다. 누구인가. 그 어머니는 바로 라합이다.(마 1:5)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두었던 일이 있었으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가나안 여인 라합이 바로 보아스의 어머니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보아스에게 숨기고 싶은 과거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방 여인인 룻을 돌보고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에게 잊혔었던 그의 과거를 다시 들춰내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어려서 받은 상처가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과거에 대해 조금도 숨김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전심으로 이방 여인 룻을 돌본다.

무슨 말인가. 그에게는 이전의 설움을 받던 과거가 현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방인의 자녀로 받았던 모든 설움과 한숨이 완전히 극복되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방인의 자녀로 받았던 아픔을 가졌던 자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룻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룻을 품어주고 다함 없는 헤세드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

보아스는 룻을 보는 순간 알았다. 이방인인 그녀가 엄청난 슬픔과 아픔을 유대 땅에서 보내게 될 것을. 그래서 룻을 보자마자 가슴에 품고 그녀를 보호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과거로 인하여 아픔을 가진 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로 승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우리의 아픈 과거가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귀한 헤세드를 전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큰 은혜이다. 그 은혜를 전하는 일에 나의 아픈 과거 역시 쓰임을 받을 수 있다.

보아스가 룻을 위로한다. 이때 룻이 받았던 위로는 분명 보아스가 베풀어준 곡식과 빵, 이삭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 보아스로부터 받은 위로는 다른 것으로 인함이다. 그것은 보아스에게서 풍겨 나오는 말로 할 수 없는 동질감 때문이다. 그가 룻에게 건네는 말의 억양에서, 쳐다보는 따뜻한 눈빛에서, 무언가 알 수 없지만, 강력히 전해지는 따뜻한 호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신이 우리를 향하여 베푸는 사랑과 위로보다 예수님의 사랑과 위로가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아픔을 이미 겪으셨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의 죽음도 겪었고 배신도 당했고, 실제 육신이 찢어질 정도의 매질도 당했다. 십자가에서 처절한 아픔과 고독의 시간을 다 몸으로 겪어낸 그가 우리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위로하신다.(요 20:19)

그 위로는 그 어떤 신도 흉내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미 경험하신 이후에 주시는 위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헤세드이고 보아스가 룻에게 보여준, 과거 상처를 통해 전달한 긍휼이다.

그 하나님의 강력한 위로가 동일하게 오늘 우리 앞에 있다. 오늘 결심하고 그분의 위로 앞으로 달려가자. 그 순간부터 신자의 생애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흐르는 인생이 될 것이다.

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