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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봄날밴드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봄날밴드’는 노숙인 출신들로 이뤄진 팀이다. 밴드에서 건반을 맡는 서보경씨의 별명은 ‘서울역 모차르트’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단둘이 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고아원에서 자랐고, 이후에는 거리생활을 했다. 마흔이 넘어 밴드에 들어와 제대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숨어 있던 빼어난 음감을 발견해 봉사단체나 종교단체에서 따로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드러머 구영훈씨는 가족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후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렸다. 한때는 삶을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밴드 활동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꿈이 없었는데, 이제는 소박하지만 작은 꿈들을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건 홈리스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달팽이소원’의 윤건 대표다. 2013년 음악을 통해 같이 힘을 얻고 자활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며 밴드가 시작됐다. 그간 멤버들이 직접 가사를 쓴 7곡이 만들어졌고, 20여곡의 레퍼토리가 생겼으며, 100회 정도 공연했다. 이들의 활동에 공감한 양희은 하림 레이지본 같은 가수들과 한 무대에 서며 실력을 쌓아 왔다.

지난 29일 유튜브로 공개된 제3회 달팽이음악제에서는 두 사람보다 늦게 팀에 합류한 최용익씨(기타)와 함께 봄날밴드가 작사한 ‘꽃피다’, 팝송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선보였다. 매니저를 자처하는 윤 대표는 멤버들이 거리생활을 청산한 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모여 연습한다고 했다.

“‘빅이슈’(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제작된 잡지)를 판매하거나 지자체의 자활 일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방역 활동도 하고요. 멤버들이 모두 밴드가 아니었으면 진작 거리로 돌아갔을 거라고, 음악이 아니었으면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해요. 그럴 때마다 감사하고, 그런 고백이 귀하죠.”

8년 차 밴드이지만 연주의 완성도가 프로들만큼 빼어날 수는 없다. 윤 대표는 “일반 밴드라면 잘하는 사람이 이끌면서 치고 나가겠지만 저희들은 가장 느린 사람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연습하는지라 느린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대에 선 이들의 연주에는 테크닉을 뛰어넘어 거리를 벗어날 힘을 얻게 한 음악에 대한 간절함, 진지함, 뭉클함이 묻어났다. 봄날밴드는 발달장애 아동이나 정신병동 수용자, 알코올중독 환자처럼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기도 하는데, 그때는 “노래보다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 된다”고 한 윤 대표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제3회 달팽이음악제에는 봄날밴드 외에도 홈리스와 독거노인, 쪽방촌 사람들로 구성된 ‘채움합창단’ 멤버와 사물놀이패 ‘다시서기 두드림’이 공연했다. 채움합창단을 지도하는 바리톤 이중현씨는 공연 중간 삽입된 인터뷰 영상에서 “무대에 설 때만큼은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이 박수를 받는 사람이 돼요. 가슴 한편에 찌릿찌릿해 오는 감동이 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사람들의 손이,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이 사람들을 바꿀 수 있겠구나, 무대가 이 사람들을 바꿀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라고 했다.

살아온 날들이 너무 추웠기에 ‘봄날밴드’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들의 대표곡은 이날 공연에서도 불렀던 노래 ‘꽃피다’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꿈이 가득 담긴 곡이다. ‘늦게 핀 꽃의 향기가 더 아름답고 좋으니 봄날을 기다리는 겨울처럼 내 삶의 봄날을 기다리지. 세상의 가시에 내 심장이 찔려도 난 괜찮아. 내겐 꿈이 있어.’

봄날밴드의 봄날은 물론이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분투한 우리 모두의 새해 봄날을 기대한다. 안녕, 2020년.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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