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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의 지금 유럽은] 올 과제 경제회복 0순위… 브렉시트 이후 新질서도 구축해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전환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인 지난달 31일 오후 11시(현지시간)를 막 넘겨 영불해협을 건너온 화물트럭 한 대가 영국의 핵심 항구인 도버항에서 입항 수속을 밟고 있다. 영국은 이 시각을 기점으로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4년 반 만에 유럽연합(EU)을 실질적으로 탈퇴했다. AFP연합뉴스

요즘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농담 속에서 절대로 방문하지 말라는 2020년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전 세계는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겠으나 유럽은 크게 세 가지 과제를 안고 2021년을 시작한다.

첫째는 코로나19 사태의 해결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회원국 간 연대를 강조하기 위해 지난 12월 27일을 EU 백신 접종 개시일로 정한 이래 현재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어 유럽 사회의 집단면역은 점차 증진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경제를 어떻게 회복시킬지가 큰 문제로 남아 있다. 경제가 악화되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갈등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개별 국가의 국내 현안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불황이 계속되면 유럽의 골칫거리인 테러, 난민 문제 등도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EU는 회원국 간 격차를 줄이며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코로나 사태 발발 전에 이미 유럽구조기금(European Structural Funds)을 도입하긴 했지만 최근 추가로 조성하는 경제회복기금(Stimulus package)을 통해 친환경, 디지털, 위기대응력(resilience) 강화 등에 초점을 맞춘 경기부양책을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둘째는 브렉시트 이후의 신유럽질서 개편이다. 지난해 1월 영국이 공식적으로 EU에서 탈퇴한 이후 양측은 다양한 분야에서 밀고 당기는 협상을 진행해 오다 지난 12월 24일 극적 타결을 보며 ‘성과 없는 결별(No deal Brexit)’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그러나 금년에 양측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고난의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영국·EU 자유무역협정(FTA)도 협상타결안에 포함돼 있어 물품의 이동에 따른 관세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통관절차 등이 복잡해지면서 기업들은 많은 부담을 안게 됐다.

인력의 이동에 있어서도 장벽이 추가된다. 영국이 EU 회원국이었을 당시 EU 내 거주나 취업이 자유로웠던 영국인은 이제 EU 내에 90일 이상 체류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하며, 영국에서 취득한 자격증도 EU에서 자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과거 수십년 동안 유지해 왔던 현실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유럽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살며 가족공동체를 이룬 사람, 직장에 장기간 취업해 있는 사람, 이중국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은 만큼 EU 내에 살고 있는 영국인 개개인의 법적 지위는 모두 달라질 것이다. 물론 영국에 체류 중인 EU 국민도 마찬가지다.

유럽 역사를 보면 한 나라가 광활한 영토를 오랫동안 지배하기보다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강력한 몇 나라가 힘의 균형을 주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영국은 항상 이 힘겨루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 그런데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의 주도권을 독일과 프랑스가 점차 장악해가는 것을 보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영국은 전 세계 육지 면적의 20%,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54개국의 리더이다.

따라서 EU를 탈퇴해도 교역이나 노동력 확보 측면에서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격변의 시기였던 20세기에 교통, 통신의 발달 등에 힘입어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함께 구축해놓은 협력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은 영국뿐 아니라 EU 국가들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 때문에 ‘이별의 연착륙’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은 다자주의(multilateralism) 위기의 극복이다. 원래 다자주의는 공동의 노력으로 ‘더 좋은 것’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등장했다. 유엔도 그렇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그렇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가 간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해지고, 국제기구가 힘 있는 나라들의 각축장이 되기도 하면서 다자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오늘날 EU도 27개 회원국이 동일한 이익을 향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번영과 안정의 시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위기가 찾아오면 아이로니컬하게도 문제 해결을 위해 창설된 국제조직이 위기에 빠진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했을 때도 EU 국가들은 일단 각자 따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는 점은 이해가 가나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로운 솅겐 지역 내에서도 예측 불가한 방식으로 국경통제 조치가 취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동 제한에 대한 EU 차원의 가이드라인 등이 나오긴 했지만 다자주의는 개별 국가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2021년 다자주의와 관련된 유럽의 또 다른 당면과제는 전 세계적 다자주의 관계에서 유럽이 담당하게 될 역할의 정립이다. 특히 노골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다자주의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무역질서 등 글로벌 이슈에 관해 유럽이 미국 등과 향후 어떻게 협력해 나아갈지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예년보다 조금 무거운 것이 사실이다. 현재 이 지구촌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의 성패는 우리에게 달렸다. 2020년에 경험한 시련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명확히 정리해보고, 금년에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 계획을 세울 시기이다. 상처받은 삶과 우리 경제가 하루아침에 치유될 수는 없으므로 인내심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가 팬데믹에 따른 세계적 위기여서 다양한 대응 사례로부터 배울 점이 있는 만큼 우리보다 복잡한 유럽 국가들의 위기극복 과정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제공할 수 있다.

OECD 국제교통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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