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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독일 통일의 참 교훈Ⅰ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새해 벽두에 늘 되풀이되는 질문이 있다. “독일은 30년 전에 통일을 달성했는데, 한국은?” 혹자는 주변 강대국들이 통일에 소극적이라며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세 번의 비스마르크 전쟁을 통해 통일을 이룬 독일이 1차, 2차 세계대전도 일으켜 전승국들에 의해 양분됐으므로 전 세계가 독일의 재통일을 막으려 했다는 점은 이런 변명을 무색케 한다.

2차 대전 뒤 베트남과 예멘도 통일됐다.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받았고, 대만과는 여행·통상·교류 등에서 분단 상황을 극복해 정치체제만 분리됐을 뿐이라 분단 비용은 최소화했다. 우리는 분단에 불신과 적대감도 계속 남아 있어 분단의 고통도 크지만, 국방·정치·경제·사회·문화 면에서의 비용이 매우 크다. 일단 우리는 주변국들을 해코지한 역사가 없어 반감을 사지 않는데도 적대적 분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두 차례에 걸쳐 독일 통일의 참 교훈을 되돌아봐 이제라도 합리적인 대북·외교 정책을 지속 추진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통일 독일은 우리의 모범 사례이다. 베트남과 예멘이 통일 국면에서 전쟁을 치렀지만 독일은 평화통일을 달성했다. 우리와 달리 독일은 양독 간 전쟁을 치르지 않아 상호 원한과 적대감이 작았고, 동독 내 베를린에서 서독의 사정을 계속 알릴 수 있었던 것이 통일을 달성하게 해준 요인임을 인지해 우리도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그렇다고 그런 베를린이 없는 우리가 북한 정권을 비방하는 내용이더라도 전단 살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양독 간 상호 비방 중단과 평화공존 및 공동번영을 지향해 성공한 독일 통일의 핵심 교훈을 전적으로 배격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남북 간 불신과 적대감을 끊임없이 증폭 재생산하는 것은 우리의 통일 과정을 중단시키고 과거로 되돌리며 지체시켜온 주요 요인이 돼왔다.

독일 대외정책을 대전환시켜 통일의 기초를 닦은 것이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소련 및 폴란드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며 평화공존 의지를 확인한 뒤, 동서독 정상회담을 통해 양독 간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보수 야당은 반발했지만 평화·협력과 동독 인권 개선을 동시 추구한다는 방향에서 극복했다. 우리와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대동독 평화·협력 정책이 계속 계승돼 분단시대 마지막 정권인 보수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까지 지속됐다는 것이다. 콜 총리는 이념 대결에 의거한 전투적이고 적대적인 인권 공세가 동독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동독의 구체적인 인권 개선은 요구하되 동독에 대한 소위 ‘퍼주기’ 차관 제공도 두 차례 허용하고 ‘퍼주기’ 화폐 통합도 추진하는 등 평화·협력 기조의 대동독 정책을 펴 결국 평화통일을 달성했다.

안타까운 점은 보수 성향의 노태우정부가 북방정책을 기치로 7·7선언에 이어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남북한 유엔 가입 등 남북 평화·교류·협력 정책을 추진했지만, 김영삼정부가 이 기조에서 이탈했고 김대중·노무현정부가 이를 되살려 발전시켰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가 대북 강경기조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북 화해·협력은 몇 걸음 가다 후퇴하고 다시 시작하다 또 되돌아가 신뢰에 기반한 협력보다 불신에 입각한 경쟁과 대결이 지속됐던 것이다. 보수 반공주의자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타협해 중국과 소련을 이이제이했던 것을 본받아 이제라도 보수 야권에서 대북 화해협력과 평화·공영 정책을 지지하는 큰 지도자가 출현해 합리적인 통일 정책에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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